네버랜드 - 3.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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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유일하게, 이 세계의 존재이유에 관해서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건, 이 조그마한 요정뿐이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통하니까 다행이지, 아니면 계속 멍청한 요정과 꼬맹이들에게 둘러쌓인채 괴로워했을게 분명하다. 팅커벨은 나를 데리고 위그드라실 나무의 중간층에 있는 오두막에 왔다. 실프라 불리는 요정들이 나타나서 차나 과자 같은 것을 가지고 테이블에 늘어놓기 전까지 팅커벨은 계속 주변을 기웃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뭐하는거야?"
"듣는 귀가 있으면 조금 곤란한 이야기라서. 곧 창문을 닫을거야. 요정들도 들어오지 않을거고."
 
무슨 꿍꿍이인지 잘 모르겠어. 다른 녀석들이 들으면 곤란한 비밀 얘기를 왜 굳이 이 세계에 처음 온 이방인한테 들려주려고 하는거야?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진 않았지만, 팅커벨은 내 의문을 이해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헐벗은 몸의 형상을 하고있는 실프들은 바람의 정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곧장 창문 밖으로 사라져갔다. 이제 오두막에 남은 것은 나와 팅커벨 둘뿐이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두 종류로 나뉘어, 태어나기 전에 죽어서 온 아이들과 버려진채 죽음을 앞둔 상태의 아이들이."
 
죽음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란 의미는 그거였나. 그렇다면 난 역시 벼락에 맞아서 죽고 여기에 오게 된 거란 이야기일까.
 
"잠깐 기다려 아직 이야기 안끝났어. 태어나기 전에 죽어서 온 아이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양쪽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어야 할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경우는 대체로 어떤 것들일까?"
 
질문을 한 건 내쪽인데 도리어 질문해오다니. 어쩌자는거야. 토론이라면 다른 녀석들이랑 해. 그런 거에 흥미없어.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생각나는 것을 말해보았다.
 
"태어났어야 하는데 유산되는 경우 산모의 건강도 위험하겠지만, 태어나야할 아이가 죽게된다면 그런 경우겠지."
"맞아, 하지만 또 다른 경우도 있어. 양 부모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 그럴땐 어떻게 할까?"
"지금 네가 말하는 것은.."
 
발랄하다못해 상큼하기까지 한 기운을 내뿜던 작은 요정은 어딘가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는 달리, 이 팅커벨이라는 요정은 인간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너무도 많이 아는 것처럼 보였다.
 
"맞았어. 바로 태어나기 전에 아이를 죽이는거야. 인간들이 말하는 의학의 힘을 빌려서 자신들이 직접 행하는거지."
 
몸이 떨려왔다. 원해서 세상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 순전히 부모의 이기심에 의해서 사지가 찢겨져 죽어가는 태아의 모습이란, 생각만 해도 역겹다. 자신들이 받아야 할 고통을 핏줄에게 전가시키는 쓰레기들.
 
"나는 그렇게 죽은 영혼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재탄생시키고 있어. 바로, 요정들로써, 새 삶을 부여하는거야. 위그드라실에 흡수되어서, 열매를 맺고 태어나는거지."
"...있잖아, 지금 네가 말한 것들을 피터팬이나 다른 꼬맹이들도 알고 있는거야?"
"아니, 고통에 대한 기억들은 모두 소거하고 이 낙원에서의 즐거운 기억들만을 가지게 되는거야. 그것이 그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선이니까."
 
확실히, 아이들에게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야. 하지만 어째서, 이 조그마한 보호자는 나에게 왜 그런 것들을 일러주는 것일까? 만약, 자신들이 부모들에게 버림받은 사생아라는 것을 요정들이 알게된다면 그 사실을 견뎌내지 못해서 타락한다던가 그런 이야기일까?
 
"왜냐면, 너는 죽어서 이곳에 온 존재가 아니니까. 여기에서 지내는 이상 나이를 먹지도 않고, 병마로 인해서 고통받는 일도 없겠지만, 영혼의 나이만큼은 그대로 자라날 수 밖에 없겠지."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좀 더 쉽게 설명해주지 않을래?"
"결국, 낙원이라곤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엄마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그저 천애고아나 마찬가지니까."
 
결국 너희가 나를 데려온 이유는 그거였니. 자기 좋을대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런거라면 차라리 가정부를 고용하지 그래?
 
"하인을 원하는게 아니야. 그런거라면 요정들로도 충분해. 우리는, 엄마가 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어. 그리고 너는 그 조건에 제일 부합하는 사람이고."
"미안하지만, 사람 잘못봤어. 나는 부모의 사랑같은 것 따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이제 겨우 15살밖에 안됐는데 세상을 저주하고 어른들을 저주하고 부모를 저주하는 여자애를 본 적이 없었던거니?"
"그렇지만, 네 기억 속에는 분명 부모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던걸. 아니야?"
 
순간, 뇌의 깊은 곳에 자리했던 단편들이 스쳐지나갔다. 뭐 기억 속? 도대체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무슨 소릴 지껄이는거지? 앨범을 들춰보았을때 발작을 하던 그 때와 비슷하다. 곤충 날개나 달고 있는 조그만게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거야? 분노를 막아놓고 있던 밸브는 그 즉시 끊어져 확산된다. 손에 나이프가 잡혔다. 테이블에서 빵을 썰기위해 준비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저 조그만 계집애를 토막내는데 쓸 수 있을 것이다.
 
"멋대로 다 안다는듯이 들춰보면서 얘기하지마!!"
 
숨이 가빠온다. 나이프를 휘두르려던 손이 갑자기 멈춰졌다. 저 조그마한 요정이 하는 것일까? 모욕에 대해서도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니. 나는 결국 죽음 이후의 세계에 오고서도 이런 굴욕적인 상황들밖에 없는거야?
 
"상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물론 괴롭지만. 그것들을 극복해낸다면 넌 어머니가 될 수 있어. 굳이 어른이 되지 않고서도, 네가 원하던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어때?"
"내가.. 어머니가 된다고?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거든!"
"그 아이들은 너와 닮았어. 다들 어딘가에서 버려지거나, 태어나기 전에 생명이 끊어진 아이들이야. 요정이 아닌채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았지? 비가 끊이지 않고 언제나 쥐 시체 썩는 냄새가 들끓던 거리에서 조용히 썩어갈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었지."
 
분노로 발작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팅커벨은 아주 초연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조그마한 요정이 아니라, 사실은 천년을 넘게 살아온 늙은 마녀는 아닐까.
 
"보호자는 너 아니었어? 그런데 왜 나한테 네 책임을 떠맡길려고 하는거야?"
"왜냐면 난, 태초부터 있었던 순수한 요정족이니까. 아이들은 영원히 살아가겠지만 난 아니야.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어. 아마 얼마 안가 이 생명도 꺼지게 되버려. 그 전에, 적임인 사람을 구해야했어. 그게 바로 너야 웬디."
"네가 죽음을 맞이할거란걸 여기선 몇이나 알고있는데?"
"죽음 이후에, 나에대한 기억은 전부 소거될거야. 여기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내 죽음 이후엔 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거고. 요정들은 물론, 피터팬도 마찬가지야. 그런 아픈 기억이 남는다면 더 이상 이곳은 낙원이 아니게 되어버릴테니까."
 
대체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거야? 그래서 기껏 나를 데려온 이유가 저 정신없는 꼬맹이들 보모역활이다 이거야? 그리고 너는 편하게 쉬기 위해서 나를 데려왔다 이거고?
 
"직접적으로 만나거나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도 많아 웬디. 하지만 난 알고있어, 너라면 저 아이들에게 상처는 주지 않을거란 사실을. 게다가, 넌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지 않니?"
"기대..라고? 뭘 기대한다는거야? 나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이곳에선 만날 수 없는거잖아? 어째서? 왜 내가 엄마를 만나러 가려는걸 막는거야?"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어. 더 깊은 비밀을 알고싶다면, 위그드라실 정상에서 잠들어있는 오베론과 티타니아를 깨워야해. 하지만 아직은, 낙원에 아이들이 그만큼 차지 않았어. 낙원이 순수한 영혼으로 가득 찰 때에, 그들은 다시 돌아와."
 
나이프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맞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 의미 없으니까. 끓어오르던 분노가 사그라짐과 동시에 깊은 허무감이 찾아왔다. 결국 난, 내가 가야할 세계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구나.
 
"엄마와 재회하고 싶은거지? 그렇다면, 그 둘을 깨우도록 해. 그런다면 넌 아마 닿을 수 있을거야.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을거야. 결국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거지."
"재회한다고..?"
 
이 세계에 들어오고나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원래 지냈던 방에선 언제나 천식으로 고생했었는데, 이곳에선 병마로 고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으니 질병도 없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알비노 증후군을 벗어나 보통 사람들과 같은 색소를 띈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선천적인거니까. 바꿀 수 없는 거였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새 많은 무리의 아이들에게 둘러쌓인 상황이 되었다. 정신없고 피곤하다. 이 세계에 온 하루 뒤, 바로, 노예시장에 거래되는 매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아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수지랑 필립하고 닮았는데? 머리도 하얗고 눈도 노란색이야!"
"와 진짜로 또 있었구나! 신기하다!"
 
가능하면 조용한 곳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고 팅커벨에게 이야기했지만 아주 당연하다는듯이 기각되었다. 공동체 생활따위 내게는 맞지 않는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려 했는데 왠지 그러면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되버렸어. 몸집은 작아도 머리만큼은 누구보다도 비상한 존재이니까. 나이프 가지고 협박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다섯살도 채 안된 꼬맹이들 몇명이 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성가시다. 하지만, 그만두라고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어느 정도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 알아서 말렸기 때문이다. 동물원 원숭이같은 취급이야 아직 여전하긴 해도.
 
"얘, 그러면 못써. 미안해요 언니. 아직 어린애들이라 이렇다니깐."
 
10살을 이제 갓 넘긴듯한 짧은 금발머리의 여자애가 사과해왔다. 나는 짧게 '딱히'라고 답했다. 아이들중 몇 명은 내 표정을 살피고 있다.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니까. 아무래도 경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서 숨죽이면서 지내면 될 일 이니까. 이제와서 누군가와 낮간지러운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무리야.
 
"엄마.... 엄마..."
 
나와 같은 알비노 증후군을 가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수지와 필립이라는 이름. 성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기에 그닥 중요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도 우리 가문의 성씨를 싫어하는 것도 있고. 하지만, 실제로 다른 알비노 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한건 사실이다. 바보같아.
 
"엄마...엄.."
 
수지는 9살 정도 된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이제 갓 2살이 된 남동생을 등 뒤에 업고 있었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꽤나 신경쓰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때의 느낌도 이것과 비슷할까. 조금만이라도 충격을 가한다면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유리인형들. 내가 본 남매는 그런 느낌이다.
 
"엄마라니?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이니?"
"아... 그게."
 
아무래도, 이 아이들 역시 이곳에 건너온지 그리 오랜시간이 지나지는 않은듯 했다.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고 남동생이 2살이어서야 이 아이에게도 곤란한 일 아닐까. 돌보아주는 것만 해도 꽤나 힘들텐데. 호기심 왕성한 강아지같은 꼬맹이들 무리에서, 그 남매는 특히나 돋보이고 있었다. 아마, 나도 같은 이유로 이렇게 주목받고 있는걸까.
 
"기분나쁘셨다면...죄송해요."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겁많은 여자아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을 경계하고 표독스러운 인상이기까지 한 나였기에 더 대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이렇게까지 저자세일 필요는 없는데. 어쩐지 이 아이가 지내왔던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 알 것 같다. 항상 누군가에 의해서 학대당해왔겠지.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동생은 그저,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것일테고. 확실히, 닮았다면 닮았구나. 나랑 말이야.
 
"아니, 기분 나쁘지 않아. 그보다, 동생을 꽤 아끼는 모양이구나."
"맞아! 조금이라도 떨어뜨려놓으면 막 울음을 터뜨린다니까!! 울보쟁이!!"
"남동생을 인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건 아니지!"
 
원숭이처럼 경박한 남자아이들이 나서면서 마구 폭언 비스무리한 것을 쏟아내고 있다. 별 사심없이 하는 말이라곤 해도 별로 듣기 좋은 소린 아니다. 뭐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래도 다른 청소년 아이들이 알아서 꾸중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의 자정작용은 확실히 되고있는 모양이다.
 
"너희들 그러면 못써!! 저번에도 동생들 울리더니 이번에 또 그럴거야?!"
 
호오, 꽤나 당찬 아이네. 나이는 나랑 그렇게 크게 차이나는 것 같지 않다. 13살이나 14살 정도로 보이는 검은 색 머리 동양인 여자아이. 양갈래 형태로 땋은 머리카락과 약간 까무잡잡한 외모를 보아 극동쪽 어딘가의 유목민으로 예상된다. 언어는 분명히 영어인데.. 어디서 배운거지? 설마, 이 세계에 들어오면서 언어의 장벽이 자연스럽게 무너져내린다던가 그런 신비라도 있는걸까. 아이들의 낙원을 무슨 학자가 연구하는듯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괴짜가 맞는 것 같아. 굳이 내가 아니더래도, 아이들의 엄마역활을 해줄 수 있는 씩씩한 친구들은 충분히 존재하는 것 같은데? 왜 팅커벨은 굳이 나한테 그런 역활을 맡기려고 한걸까.
 
"내 이름은 키타이! 네 이름, 웬디라고 했지?"
 
나랑은 정 반대의 밝은 에너지를 가진 여자애다. 나한테 거부감이 없는 것일까?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바로 맞잡고 통성명을 했다.
 
"맞아. 웬디 셰링엄. 아, 성씨는 빼도 돼. 싫어하니까 말야. 그냥 웬디라고 불러줘."
"잘 부탁해! 물론, 넌 온지 얼마 안되서 아직 좀 힘들겠지만... 너무 아이들을 싫어하진 마. 워낙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오래 지내다보니까 다들 호의를 표현하는게 서툴거든."
 
나름대로 귀족 가문의 영예로써 자라온 나였기에, 그 아래쪽의 아이들이 가진 분위기는 창문 너머로만 단편적으로 알고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좀 더 실감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꽃으로 따진다면, 마치 해바라기 같은 느낌의 소녀였다. 극동의 유목민들이 그 꽃을 본 적이 있을진 둘째로 치더라도 말이다.
 
"이야 잘됐지 뭐야. 나랑 다른 친구들 몇명만으론 동생들 돌보는게 좀 벅찼는데. 게다가.. 하얀빛 머리칼 남매는 아직 여기에 잘 섞여들질 못해서 말야. 네가 좀 많이 도와줘야할 것 같아 웬디."
 
이렇게 갑작스럽게 어떤 역활을 떠맡게 되는걸까. 허례의식 없이 속전속결이라는 점에선 꽤나 심플하지만. 아직 납득은 잘 안되고 있다. 어째서 내가 아이들의 엄마 역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거지? 게다가, 이 소녀 역시 그 남매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깨지기 쉬운 유리공예품이라 생각하는거겠지.
 
"부모들 중, 단 한사람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온 아이들이 많거든. 대개는 다 어두운 성격이거나 비뚤어져서 처음엔 말썽을 부리고 다녔지만. 여기에서 지내고선 다들 밝아졌어. 좋은 일이지."
 
아이들만의 낙원이라고 했는데. 결국은, 그런곳이라도 어른 역활을 해줄 누군가가 있어야한다는건가. 확실히 지금까지는 그 역활을 이 키타이라는 소녀와 팅커벨같은 녀석들이 해온 것 같지만. 어쩐지 피터팬은 몸집만 컸지. 하는 짓은 이 원숭이들이랑 다를 바가 없어서 믿음이 가질 않는다.
 
"아하하 너도 그렇지? 워낙 즉흥적인데다가 좋고 싫은게 너무 분명해서 어쩌다보니 미움받는 경우도 종종있어 그 녀석. 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야. 곤란한 아이들이 있으면 도와주고 직접 데려오기도 하니까."
 
분명히 성격은 180도 다른데도, 이렇게나 이야기가 잘 통하다니. 사람은 역시 상대해보지 않고서는 모든 걸 다 알 수 없는건가. 그 뒤로도, 위그드라실 나무 가지에 앉아서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흥미를 보였던 남자아이들은 금새 질린듯 새로운 장난감이나 모험을 찾으러 나선 것 같았고. 알비노 남매는 끼어들지 못한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쭈볏거리고 있다. 동질감이라는 것일까.
 
"원숭이들을 조련하는 것은 내 전문이 아니야... 하지만, 저 아이들만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돌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 너라면 아마 해줄거라 생각했어!"
"결국 이렇게 될거라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좋아 이젠."
 
알브헤임에 솟아오른 생명의 나무에 노을빛이 스며들고 있다. 얼마 안가 아이들이 해먹 위에서 잠을 청할 시간. 밤과 낮은 분명히 구분되고 있지만, 결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런 세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혐오하는 어른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분명 매력적인 세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낮설어야할 이곳이 오래전에 봐왔던 것처럼 익숙하기까지 하다. 밤하늘에 달 두개가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할때쯤이면, 나도 이곳의 주민이 되는 것일까. 나는 분명,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온건데. 반대로 엄마 역활을 덜컥 맡아버렸다. 실감은 전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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