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ngelion Another Universe 『始』- Prologue

벨페고리아 0 2,235


매-암- 매-암- 찌르르르르-
매-암- 매-암- 찌르르르르-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여름을 나타냈다.
보통 시인들이 말하길 여름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건 매미라고 했었던가.

하지만 그 시구는, 현재의 세계에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변하고 말았다.
2000년에 일어난 정체불명의 소행성 충돌. 남극에 일어난 재앙은 지구의 자전축을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지구 인구 1/3의 절멸. 강제로 뒤틀려버린 자전축에 의해 지금껏 일어났던 기상 법칙은 모두 상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해갔고, 그 결과 1년만에 20억이 넘는 인구가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이상기후로 인해 솟아오른 해수면은 일본의 해안도시를 모두 침수시켜버렸고, 내륙지방이었던 곳은 해안도시가 되는 웃지 못할 사태도 일어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름이 이어졌다.
사막화가 진행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대지방의 그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더위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당시 부모님과 떨어져 살던 나는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머니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다.
아직 10대였던 나는 정말 오랫동안, 오랫동안 울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정신을 차렸다고 할만한 때는 그 소식을 들은 후로부터 3년이 지난 후였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었던 어머니의 부고를 전한 아버지의 목소리──아버지는 빈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유해도 없이 치뤄진 장례라지만……과연 어머니를 사랑하긴한걸까. 어릴 적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가 웃음 짓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겐…웃어줬을까?


"덥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최근 며칠간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엔 몇 점 구름이 끼어있긴 했지만 흐리다고 보기엔 상당히 맑았다. 고개를 내리자, 나무 사이로 도회지의 풍경이 어스레하게 비쳤다.

'저기가 제3신동경시인가.'

목적지가 보이자 힘이 빠진 다리에 잠시나마 기운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새 거처에 자리를 잡으면 자동차를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차가 갑작스레 운행을 중지해서 역에서 내렸더니, 산을 하나 넘으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다행히도 도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마 자칫 잘못했으면 산을 넘다가 해가 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슈우우웃-
쿠우우웃-

'무슨 소리지?'

얼마쯤 걸어 내려가다, 이상한 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공기가 찢어지면서 나는 소리. 머리 위에 비행운이 떠있었고, 그 끝을 살펴보다 선회비행 중인 전투기를 발견했다. ……이상할 정도로 고도가 낮았다.

'저렇게 낮게 날면 위험……'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하늘이 이상한 색으로 물들었다. 일순간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은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원래의 색깔로 돌아온 하늘에 전투기의 형상은 없었다.

'무슨……?'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폭음이 공기를 찢었지만 다행히 잔해가 근처에 떨어지진 않았다. 왔던 길을 돌아보자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서있었다.
인간…? 거대한 인간? 그렇다고 보기엔 관절의 움직임이 이질적인데다(관절이 있긴 한건지 의문일 정도로), 호흡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이목구비는 당연한 듯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상한 가면같은 걸 쓴…….

콰아아아앗-

순간 내가 서있는 곳을 기점으로 뒤에서부터, 굉음을 내며 순항미사일이 날아왔다. 하나뿐이 아니었다. 눈으로 쫓기 전에 이미 목표에 착탄한 건지, 방금 전 본 거인이 있던 자리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크기가 보통이 아니어서일까. 보통이라면 거대해 보여야할 폭발이 마치 수면에 올라온 기포가 터지는 것처럼 왜소해보였다. 그리고 폭발로 인한 화염이 걷히고 나타난 모습은…….

"거짓……말……이지?"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그 거인의 모습이었다. 밀리터리에 대한 지식이 충분한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혀 피해를 받지 않았다니……? 그런 일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이해범주를 초월한 그것은──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가 얼어붙어버렸다. 어린 아이는 아니었지만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서라면,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그다지 다른 대응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인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백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많던 전투기들은 이미 전장을 이탈해 보급을 받으러 간건지 보이지 않았다.

'방향으로 봐선 도회지 쪽인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알려야할까? 아니 하지만 이런 게 움직이고 있는데, 전투기가 나타나서 폭격을 퍼부었는데 모를 리가 없는데 사람들이 대체 어째서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거지 벌써 엄청 난사태 가벌어 져있 어야정상인데여기저기서비명이들리고혼란에빠져───'

쿠웅-

정신이 돌아왔다. 이질적인 소리였다. 거인이 움직일 때는 마치 물풍선이 바닥에 떨어져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면, 방금 난 소리는 무언가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 그러나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정확히는 돌아보지 않아도 됐다고 해야할까. 소리의 근원지가 엄청난 속도로 눈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앞서 나타난 것을 '거인'에서 '거대괴수' 정도로 격하시킬 정도로 인간에 가까우면서──또한, 인간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듯한 무기질적인 외관. 전체적인 생김새는 인간에 가까웠지만, 미묘하게 또한 인간같지 않은 모습.

새롭게 나타난 거인은, 마치 인간이 단거리를 주파하는 듯한 모습으로 거대괴수에게 달려가, 강렬하게 충돌했다. 어깨를 비스듬히 세워 인간으로 치면 명치에 해당할 법한 위치를 강타하는 돌진. 잠시나마 둘의 몸체가 공중에 떠올랐다가 땅에 떨어졌다. 방금까지 상당히 가까이에 있다고 느껴졌던 괴수가 그 절반으로 줄어들었단 착각이 들 정도로 꽤나 멀리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거인이 자세를 바로잡아 일어나기 전에 괴수의 팔이 거인의 몸통을 가격했다. 거인은 괴수의 반격에 의해 달려온 거리만큼은 족히 날아간 듯 싶었다. 도회지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까지 땅을 파내며 뒹군 그것은 간신히 자세를 바로 잡았다.

'피? 아니, 뭔가 다른거 같은데. 하지만 저 색깔은 아무리 봐도 혈액으로밖엔…….'

붉은 액체가 거인의 가슴께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혈액과는 달라보였지만 뭐가 다르다고 단정지을 순 없었다.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감으로 혈액과는 다르다고 느꼈으니까.
거인은 지쳐버린 달리기 선수처럼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귀를 기울이면 식식 거리는 거친 호흡이 들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인의 발 밑에 있던 땅이 꺼진 것처럼 갑작스레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흰 연기가 자욱히 피어올라 그 너머의 빌딩 숲을 가렸고 또다시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이이이이잉-
쿠오오오오오-

'구경할 때가 아니지, 참!'

멍하니 보고 있던 자신을 책망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런 만화영화에나 나올법한 괴수대전 근처에 있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나갈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엄폐물은 보이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내리막길을 전력을 다해 뛰기로 결정했다. 달리기에 자신 있는 편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테니까.

뛰어내려가며 뒤를 힐끗 돌아보자, 거대괴수가 천천히 도회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순식간에 여러가지를 보았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숨이 차오르면서 생각도 점점 정리되어 갔다.

'생각해보면 저런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데 도회지에 아무 혼란도 없는 건 말이 안 돼. 이미 사람들이 대피했단 소리겠지. 그렇다면 이 주변에도 분명히 대피소같은 곳이…….'

도로가 크게 휘며 U자로 꺾인 지점에서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대피소의 입구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도회지 너머에 대피소가 있다면 이미 가기에도 늦었고, 하는 수 없이 좀 더 멀리 떨어지기 위해 발을 놀렸다. 굉장한 폭음이 연달아 들렸지만 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길 끝은 U자로 꺾여있었기에 도로를 따라 간다면 거인쪽으로 가까워지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없는 쪽을 달려내려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잠깐 숨을 들이켜고, 큰 사고가 없길 기도하면서 크게 한 발 내디뎠다.

다행히 때를 맞춘 듯 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땅울림이 온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세좋게 내리막길에서 굴러버리긴 했지만 어디를 크게 접지르진 않았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 닿아 간신히 멈췄을 때야 땅울림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눈 앞에, 아까의 거인이 서 있었다.

'아니. 어딘가 달라. 아까 그건 전체적으로 노란색이었는데, 이 거인은…….'

동체와 손은 붉은 색이었지만, 사지와 두부는 보랏빛이 도는 검은색의 장갑裝甲으로 감싸져있었다. 자세히 보면 색상 외에도 생김새가 다른 부분이 더 있었다. 예를 들자면 두부의 모양새라던가, 흉부의 장갑의 형태라던가. 거인은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이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뭐지, 잠깐. 설마. 위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목적인지 몰라도 거대한 손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반응해야한다고 뇌가 경고하고 있었지만 무언가에 붙잡힌 듯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거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어라……. 여자애 목소리?'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남아있었다니…….」

대답하기 전에 거인의 손이 날 붙잡았다. 그대로 몸이 들어올려지는 느낌은 기분 좋다곤 말할 수 없을테지. 들려오던 목소리도 어느샌가 끊겼고, 아까 나타난 전투기들이 괴수의 몸에 착탄시킨 수많은 미사일들이 폭발하며 나는 소음만이 귀청을 때렸다. 그러나 그 쪽을 바라볼 새도 없이 날 잡은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혹시라도 아프시면 말씀해주시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전에 거인의 움직임이 잽싸게 변했다. 날 붙잡은 손은 다행히 약간의 진동만 빼면 크게 움직이지 않아 멀미가 나진 않았다. 아까 나왔던 거인과는 달리 괴수와 싸우려는 건 아닌 듯 했다. 명백히 괴수쪽에서 멀어져가고 있었으니까.

'아니지.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거인은 날 쥔 채로 도회지로 향했다. 폭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지만 어쩐지 걱정되었다. 내 발로 직접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지만, 방금의 거대괴수는 아무리 봐도 도회지로 향하고 있었다. 거인이 날 도회지에 내려준다고 해봤자 사실상 크게 나아질 건 없는 상황이었다. 대피소로 데려다 주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그리고 거짓말같이 소리가 사라졌다. 폭음도 전투기의 순항소리도 거인의 발소리도 일순간에 사라지고 세상의 색이 갑작스레 페인트통에 던져진 것처럼 변했다. 사진기가 눈 앞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듯 시야가 하얗게 변했고, 이윽고 눈을 다시 뜨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일견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 했다.

「─━━─━─!」

귀를 찢을 듯한 비명소리를 제외한다면. 거인이 울부짖고 있었다. 고통에 소리지르고 있었다. 어느샌가 걸음도 멈춘 채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절규하고 있었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팔을 사용할 수 없어 불가능했다. 최소한 비명의 원인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가능한한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

나를 붙잡았던 오른손은 멀쩡했다. 물론 동체로 이어지는 팔도 무사했다. 몸통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반대쪽……왼팔, 아니 왼팔이 있었던 자리가 없었다. 팔꿈치가 있었던 자리가 없어져있었다. 뼈가 드러나보일 듯했다. 사람으로 치면 삼두근에 해당할 부위가 허옇게 불타올라있었다. 그리고……피같은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토……철……습니다.」

그 상처부위에 정신이 팔린 채, 무언가 말하는 소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거인은 꿇었던 무릎을 부들거리며 일으켜 세웠다. 한쪽 손에는 날 붙잡고 있었고, 날아가버린 반대쪽 팔으로는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었기에 일련의 동작은 불안정했다. 몇 번인가 넘어질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거인은 다시금 도회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까 본 괴수의 공격과 같은 빛이었어……. 설마?'

고개를 틀어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곳엔 괴수가 서있었다. 인간의 뼈처럼 보이는 회색빛 가면을 쓴 그 '괴수'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폭발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저런 융단 폭격을 받는 와중에도 이 쪽을 향해 그 무시무시한 광선 비슷한 무언가를 쏠 정도로 여유롭단 거겠지.

'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잠시 전투기들이 폭격을 멈추고 전열을 이탈했을 때였다. 보급을 위해 이탈해가는 전투기들이 생겨나면서 폭발은 점차 잦아들고 있었고, 때문에 괴수를 온통 가리던 폭염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폭염의 사이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저게 뭐지?'

거대한……막. 그 모양이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가 폭염과 괴수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괴수에 닿기 전, 미사일이 모두 그 막에 닿아 폭발하고 있었다. 저 막이 있는 이상 무슨 짓을 하든 저 괴물은 쓰러지지 않는다. 아무 정보도 없이,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러뜨리려면 어쩐지, 지금 자신을 쥐고 옮기고 있는 이 거인만이 답이라고…….

그 생각을 입에 담으려는 찰나, 주변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둘러보자, 이미 거인은 도회지에 도착해 있었다. 거리에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다만 빌딩 숲 사이사이에 이상한 형태의 건물들이 몇몇 보일 뿐이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목을 쭉 뺐지만, 아쉽게도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날 붙잡은 거인 채로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어?"

깜짝 놀라 밑을 내려다 보려 했지만, 거인의 손마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옆으로 무언가의 기계장치가 잔뜩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인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붙잡혀 있는 입장에선 충분히 불안할 정도로. 하지만 무언가 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거인의 소리는 아니었다. 좀 더 작은 생명체가 헐떡이는 소리. 어디서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양 옆으로 꾸준히, 일정한 텀을 두고 전등이 지나갔다. 정확히는 거인을 태운 승강기가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일테지.

「……려요? ……씨. 사람……래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터널의 안쪽에 부딪혀 울렸기에 어디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용을 알아듣는 것 또한 무리였다.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것은 포기하고, 이 '이동'이 언제 끝나는 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끝은 금방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강기가 멈췄다.

'낯선 벽……인가. 당연하지만.'

거인이 승강기에서 내려 바닥에 발을 디디자, 마치 약속된 듯 여러 기계장치가 거인을 향해 다가왔다. 거인은 팔을 움직여, 그 중 유일하게 가운을 입은 사람이 서있는 기계에 날 내려주었다. 딱히 긴 시간 잡혀있던 건 아니었지만 다리가 좀 뻐근했다. 두어번 반복해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도한 뒤, 허리를 쭉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카리 군?"

가장 먼저 눈에 걸린 것은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대학에서 신세를 졌던 선배…….

"아카기 선배?"

반가운 감정 이전에 놀랍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보다 3년 정도 선배인 사람이기에 본 것은 딱 1년뿐이었다. 그녀가 이런 곳에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혹시……선배도"
"이카리 신지."

말을 채 끝마치기 전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듣고 싶지 않았는데. 저 사람의 목소린.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마지막으로 들었던 때는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었을 때. 그 뒤 본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들은 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간……만나야 했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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