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zelnut

블랙홀군 2 2,516
여기는 중간계의 한 도시인 셀렌티아. 
이 곳은 특히 옛 선조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지만, 특히 여기에 있는 셀렌티아 유니버시티는 옛 왕궁을 그대로 대학교로 개조한 곳이라 어쩐지 멋스러운 느낌이 났다. 중간계에서는 Top 2에 든다는 얘기가 있었고, 여기에 오기 위해 다들 마법 수련을 열심히 한다고도 하던. 

---

"어, 헤즐넛? "
"아, 발렌티아씨. 안녕하세요? "

수업도 휴강했겠다, 심심한지 교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헤즐은 카페로 향하던 도중 발렌티아를 만났다. 
오른족 어깨로 넘긴 긴 머리가 부드럽게 말려 있는, 하얀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뱀파이어. 급하게 나왔는지 어제 입었던 데님 셔츠에 스키니진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어디 가나봐? "
"수업도 휴강했고 해서, 그냥 카페나 좀 가려고요. "
"아... 그래? 도서관이라도 가지 그래? "
"거기도 오래 있을 곳은 못 돼요. "
"하긴... 웬지 그럴 법도 하다, 너라면- 아차차, 나 지금 수업 지각할 것 같아서 이만! "
"지각하시기 전에 얼른 가세요. "
"응, 나중에 보자! "

손을 흔들어주고 그녀는 뛰어갔다. 
굽이 낮은 신발이라 망정이지, 하이힐이었으면 100% 넘어졌다. 그녀도 발길을 돌려 평소에 늘 가던 카페에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
"카페모카 하나랑 와플 주세요. 와플은 초코시럽 뿌려서 주시고, 카페모카에는 휘핑크림 올려주세요. "
"7,800원입니다. 음료랑 와플 같이 드릴까요? "
"네. "
"진동벨 울리면 찾으러 오세요. "

진동벨을 건네받은 그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책과 가방을 내려놓았다. 

"후우... 왜 하필 휴강이래...? 이것만 없었어도 늦게 나올 수 있었는데... "

자리에 앉아 책을 막 펼칠 무렵, 진동벨이 울렸다. 다르르르, 울리는 진동벨을 들고 카운터로 간 그녀는 커피와 와플을 받아왔다. 
하도 자주 와서 그런지 이제는 그녀가 어떤 컵에 담아달라고 하는지 정도는 외운 듯 하다. 그만큼 그녀는 이 카페를 많이 왔다. 친구도 별로 없는데다가 수업시간이 다 어긋났던 터였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가 있자니, 조금만 자리를 비워도 연락처를 적어둔 쪽지가 열몇개는 와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기... "
"......? "

막 와플을 한 입 먹으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올려다보니 낯선 남자였다. 
머리에는 까만 머리카락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 보니, 인간인 듯 했다. 앞머리는 한 쪽으로 넘긴 것 외에 따로 스타일링은 하지 않았다. 그것도 최근에서야 넘기기 시작했는지, 앞머리가 가지런하지 않았다.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평범해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막 받아왔는지 한 손에 들고 있었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한참동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실례좀 해도 될까요...? "
"......? "

그리고 이내 그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을 읽어보고 있었다. 까만 뿔테 안경 너머로, 글자를 읽느라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 책, 어디서 사셨어요? "
"예...? 이거 전공서적인데...... "
"아, 그렇구나...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
"어둠속성 마법이요. 그런데 그건 왜...? "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실례했습니다. 저는 헤이라고 합니다. 다른 학교를 졸업하고 여기에 마법 연구원으로 와 있습니다.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여기서는 전공서적으로 쓰나봐요? "
"네. "
"실례지만 이거 며칠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
"그건 좀...... 이걸로 수업을 지금 듣고 있어서요... "
"아, 참... 그렇군요.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
"학교 서점에서요. "
"...... "

그녀는 썰어놓았던 와플을 한입 베어물고,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손으로는 연신 빨대를 움직여 애꿎은 휘핑크림을 커피에 녹이고 있었다. 

"와플 좋아하세요? "
"네. "
"저도 좋아하는데... 참,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
"헤즐이예요. "
"헤즐...? 헤즐넛? "
"어, 그거 제 별명인데... "
"진짜요? "
"네. 다들 헤즐넛이라고 불러요. "

그제서야 경계가 조금 풀렸는지 크림을 휘젓던 손을 멈췄다. 
빨대를 다시 컵에 꽂아두고 와플을 한 입 베어문 그녀는 포크를 접시 위에 내려놓고 헤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구원으로 와 계시면 지금 교수님 밑에 계신건가요? "
"네. 목속성 전공하시는 교수님 밑에 있어요. "
"음... 그럼 그쪽도 전공이 목속성이세요? "
"네. "
"...? 그런데 이 책을 읽고싶다고요...? "

그는 고개를 움직이던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와플에 닿으려는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었다. 

"......? "
"아, 이거 닿을 것 같아서... "
"아... "
"뭐, 저는 전공이 목속성이긴 한데 어둠 마법 수업도 듣긴 들었었거든요. 교양이지만... 그때 교수님께서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했던 책이 이거였어요. "
"아... "
"헤즐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저... 올해 201이요. "
"......? 예? 201세라고요...? "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종족을 한번도 본 적 없지는 않았을텐데? 게다가 머리 양쪽에는 뿔이 있어서 다른 종족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는데. 

"......? 악마라던가, 몽마라던가 하는 건 본 적 없으세요...? "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생각보다 나이를 꽤 드셨네요. "
"...... "
"201살이면 우리들 나이로 치면 20세정도 돼나요? "
"아, 네. 그...그러네요. 그쪽은 나이가...? "
"전 올해 서른 하나입니다. "
"아... 저보다 연장자시네요... "

서른 하나라고? 그정도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꽤 동안이구나.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를 밝히기 전까지는 20대 중후반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꽤 귀엽게 생긴 인상도 그렇지만, 키가 머리 하나는 작아보여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전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
"어... 잠시만요... "

가방을 뒤적거리던 그녀는 가방 안쪽에 들어있던 전화기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헤이에게서 건네받은 전화로 그녀의 번호를 누른 뒤, 전화를 걸었다. 

"이름이... 헤이...라고 하셨죠? "
"네. "
"됐다... "
"저, 그럼 이만 가볼게요. 참. 괜찮으면 말 놔도 돼요? "
"네. 윗사람이 존칭쓰는 거 불편해서... "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보자. "
"네, 나중에 봐요. "

맞은편에 앉아있었던 헤이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일어섰다. 
얼핏 보기에도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보였지만, 그보다도 다른 남자들처럼 무턱대고 작업을 걸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건가? 뭐... 그거야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만. '

그녀도 와플 접시를 마저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를 나선 그녀는 강의실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방을 옆 책상에 올려놓고 필기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올려보니 아까 만났던 헤이가 그녀의 앞에서 씩, 웃고 있었다. 

"안녕? "
"...?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
"청강. 이 수업 하시는 교수님께 허락 받고 왔어. "
"......? "
"옆에 자리 있어? "
"아뇨. "

옆 책상에 올려뒀던 가방을 치우자, 헤이는 옆 책상에 앉았다. 

"그 책, 같이 봐도 돼? "
"예, 뭐... "
"점심은 먹었어? "
"아직이요. 수업 끝나고 먹어야죠. "
"그럼 같이 먹을래? 나도 아직 점심 안 먹었어. "
"뭐... 그러죠. "

평소에는 그녀가 자리에 앉아있으면 선배들이 와서 작업을 걸곤 했었는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아무래도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그런걸까. 
평소같지 않아서 이상한지, 그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왜 그래? "
"아, 아뇨;;; 평소에는 이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작업을 걸곤 했거든요... 오늘은 그런게 없네요. "
"아... 진짜? "

말없이 턱을 괴고 있는 헤즐을, 헤이는 위아래로 찬찬히 뜯어봤다. 
까맣고 구불거리는 머리에, 허리에는 작은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마도 몽마의 혼혈인지, 의자 밑으로 꼬리도 살랑거리고 있었다. 

"음... 웬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너, 혹시 몽마쪽 혼혈이야? 등에 날개가 있네? "
"아... 부계는 악마고, 모계가 몽마예요. "
"그렇군... "
"......? "
"왜, 너 예쁜데. "
"에, 뭐... "

헤즐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외로 꼬곤 발갛게 물든 양 볼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런 그녀가 재밌었는지, 헤이는 킥킥 웃었다. 

"왜그래요...? "
"재밌어서. "
"......? "
"너, 한번도 이런 얘기 못 들어봤지? "
"듣기야 많이 들었죠. 작업때문에... 근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
"이렇게...? "
"어, 그러니까... 음...... 작업 멘트 없이? "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그래요? "
"너 되게 귀엽다. "
"......? "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작업 멘트 없이 그 얘기가 나와서 그런거야? 진짜? "
"호불호는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작업남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저한테 작업 거는 선배들도 솔직히 소문 안 좋은 게 사실이고... "
"풋, 그래? "

헤이는 귀엽다는 듯 헤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Author

8,759 (78.7%)

<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Comments

Nullify
--제목의 그건 헤이즐넛의 의도적인 오타인가요?--
블랙홀군
어 스펠링 이거 아니예요?

+아이고 틀렸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33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414
132 Evangelion Another Universe 『始』- Prologue 벨페고리아 04.08 2267
131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2 RILAHSF 04.04 2390
130 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4.03 2262
129 The sore feet song 블랙홀군 04.02 2342
128 짧은 글 댓글2 다움 03.27 2386
127 [자연스러운 문장 연습] 귀머거리 BadwisheS 03.26 2421
126 더러운 이야기 댓글2 기억의꽃 03.23 2447
125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아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3.18 2476
124 죽음의 죽음 댓글3 더듬이 03.16 2544
123 현자 더듬이 03.16 2291
122 애드미럴 샬럿 폭신폭신 03.15 2514
121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1 RILAHSF 03.07 2496
120 유정아 댓글1 민간인 03.05 2599
119 LOM Sentimental Blue Velvet Ground 終章 - 상념 Novelistar 03.04 3133
118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관리자 댓글3 RILAHSF 02.27 2539
117 Vergissmeinnicht 블랙홀군 02.26 2468
116 [시?] 첫사랑 Caffeine星人 02.24 2656
115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4월의 전학생 댓글3 RILAHSF 02.22 2784
114 시시한 시 Sir.Cold 02.22 2722
113 전설의 포춘쿠키 댓글1 민간인 02.19 2575
112 [단편] 미네크라프 Caffeine星人 02.17 2640
111 [푸념시] 씻어내자 박정달씨 02.17 2492
110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댓글2 블랙홀군 02.16 2400
109 나는 너의 미래다 - 끝 민간인 02.14 2448
108 나는 너의 미래다 - 3 민간인 02.12 2485
107 [창작 SF 단편] - 인간, 죽음 Loodiny 02.10 2536
열람중 Hazelnut 댓글2 블랙홀군 02.09 2517
105 나는 너의 미래다 - 2 민간인 02.07 2615
104 Workerholic-Death In Exams(3) Lester 02.02 2436
103 카펠라시아 기행록 - 1 댓글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2.01 2489
102 [소설제 : I'm Instrument] 종료 & 감평 댓글11 작가의집 02.01 2855
101 [소설제 : I'm Instrument] 갯가재 Novelistar 01.31 2871
100 [소설제 : I'm Instrument] 새벽의... 앨매리 01.31 2554
99 [소설제 : I'm Instrument] 열시까지 BadwisheS 01.30 2479
98 [소설제 : I'm Instrument]Color People Lester 01.30 2841
97 이복남매 이야기 블랙홀군 01.30 2428
96 [창작 SF 단편] - 열역학 댓글3 Loodiny 01.27 2711
95 부고(訃告) 댓글2 가올바랑 01.25 2421
94 마그리트와 메를로 퐁티 그 사이에서. 댓글2 Sir.Cold 01.25 2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