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 : I'm Instrument] 갯가재

Novelistar 0 3,209
등대 그늘녘엔 파도가 부딪쳐 스며든 짠내와 따개비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그 중 한 곳을 골라 앉아 내다보이는 앞 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곶을 바라 보았다. 평범한 능선의 산이 곶을 따라 저 편에 보였고, 썰물이라 바닷가 아낙네들은 곶 근처 갯벌에 나와 물질을 하고 있었다. 습기와 소금기가 섞여 텀을 두고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가만히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습한 바람이 말라가면서 스웨터에 서서히 말라붙은 소금 결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파제 사이사이의 검은 구멍에서 갯가재들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갯가재 한 마리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망설이기를 반복하다가 내 옆에 와 앉았다. 바닷가에 사는 다족류가 이렇게 가만히 머물러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곁시선으로는 아낙네들이 갈귀로 바지락을 긁어 모으는 모습과 호미로 땅을 파 낙지를 잡아내는 모습, 파도가 코 앞까지 치밀어오르다 아직은 아니라는 듯 물러서는 모습, 아낙네들이 마을에서 달려온 트럭을 타고 돌아가는 모습. 해가 파도를 따라 불꽃 아크릴을 그려내며 서서히 바닷속으로 잠겨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쩜 그렇게 연기도 나지 않고 스리슬쩍 도둑놈처럼 바닷속으로 슬며시 가라 앉을까.
 
그 사람과 왔던 바닷가였다.
물질하는 그 사람을 보며 앉아있던 등대 그늘이었고, 그 사람이 방파제 이리 저리를 껑충껑충 넘어다니는 것을 바라보던 그 때 그 순간 그대로였고,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눈이 내리는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 차를 달려 왔을 때도 항상 이 풍경 이 이미지 그대로였다.
 
스물. 그 사람을 얼떨결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경위로 만나게 되어 좋다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루프트탑에 스키 기어가 달린 녹색 마티즈를 타고.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도 살며시 땀이 나고 겨울엔 히터를 틀고 창문을 꽉 틀어막아도 냉기가 살며시 스며오고 입김이 불어져 나오는 그 마티즈를 타고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늙은 작가였던 그의 마지막 남은 원고료로 운 좋게도 풍경 좋은 방들만 빌려가며 이곳 저곳 기약없이 여유롭게 유랑했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던 길을 돌려서라도 갔고, 나는 잘 모르지만 언제 어디서든 쏜살같이 연락이 오는 그의 정보통으로부터 어떤 바다에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하면 금새 그 곳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폐암 말기였고, 이따금 뱉어대는 피 섞인 가래와 잦은 기침을 빼고선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멋스럽게 뒤로 쓸어 넘겨 자연스럽게 잡힌 회색빛 머리와 작가라는 인상 덕분에 그 잦은 기침도 뭔가 어울리는 듯 싶었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담배는 어찌 그렇게 피워댔을까.
 
이 곳에 왔던 기억은 세 번쯤 일 것이다. 자주 들렀던 곳보다는 적은 횟수지만, 어쩜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비록 가을자락이라 눈은 내리지 않고 입김도 나오지 않지만, 왠지 내 눈에는 선하게 함박눈이 하늘에서 내리며 갯벌에 쌓이는 광경과 그 사람이 갯벌 이리저리를 뛰어다니며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며 어린 아이마냥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리기 직전 차 안에서부터 그렇게 기침을 해댔던 그였는데, 내려서 눈이 송송 내리는 그 갯벌 위를 팔 벌리며 뛰어다닐 때는 어쩜 그렇게 기침도 멎었던지.
 
그는 그 때 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내가 두 손에 커피와 그가 좋아하던 찐 감자를 사오던 때에 차 안에 편안히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잠에 들었는지 몰라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아 조금 기다렸을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목에 맥을 짚어 보았고, 아무 느낌도 없었다. 나는 당황하지도 않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내가 그 때 왜 그렇게 침착했을까.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 보았었다. 그는 편안하게 잠든 것처럼, 너무도 편안하게. 누가 봐도 방금 세상을 떠난게 아니라 푹 잠에 빠진 것 같이 누워 있었다. 웃고 있었다.
 
살며시 눈이 오기 시작한다. 갯가재는 눈송이를 맞더니 정신을 차린 듯 바르르 다리를 바삐 움직여 방파제 아래로 내려갔다. 등대지기가 내 쪽으로 걸어오며 열쇠로 등대 문을 따곤 안부를 묻고 춥지 않느냐고 했다. 난 곧 일어설거니 괜찮다고 했고, 그는 등대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멀어지며 맴돌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쇠로 트렁크 문을 열고 체인을 채웠다. 마티즈는 여전히 자기 몸보다 긴 스키 기어를 위에 달고 있었다. 운전석 문 앞에 서서 마티즈를 둘러다보았다. 그리곤 운전석 안으로 들어가 핸들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그의 자리에 앉아 그가 손 잡던 핸들을 잡고 앉아 있는게 큰 일 마냥 와닿았다. 시동을 키고, 히터를 틀었다.
 
차 안에서 들이쉬는 차가운 공기는 왠지 그 어린 날의 빙판 건너 통유리 창문에서 들이마시던 공기와 같아 더더욱 폐부로 스미어왔고, 나는 잠시 핸들에 이마를 댄 채 소리 죽여 울었다. 그가 사그라들어 재가 되어 바다에 흩뿌려지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그저 손을 앞으로 맞잡고 그가 날아가 바다에 스미는 것을 보고 있었고, 스무 살이던 나와 나이 든 그와의 유랑을 두고 뒤에서 수군대던 이들의 말뜻이 들려와 말없이 슬퍼 했었다.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를 풀고, 엑셀을 밟았다.
등대가 점점 멀어져가며, 앞유리에 쌓이는 눈송이는 점점 거센 바람에 흩날려 머물지를 못했다.
 
 
 
END
 
 
 
노래 :  붕대클럽 - 불온한 바람
 
후기
요즘 들어 나이 든 작가나 기타 예술인과 함께 유랑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나마 욕구를 해소 해봅니다. 은교?
저 혼자 감상에 취해 쓴 글이라 제 글 고유의 단점, 즉 전 다 알고 느끼고 쓰지만 읽는 이는 서술된 내용에서 제가 느꼈던 만큼의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단점이 보이네요. 여전히.
 
뭐, 글이 엄청나게 빠르게 나오는 건 아직 좋지만 이제 슬슬 느긋하게 쓸 때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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