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 프롬 헬 - 프롤로그. 악몽

무지작가 3 2,511
라이즈 프롬 헬
 
프롤로그 _악몽
 
" 크허억... 허억... 허억... "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뿐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바로 발 밑의 흙길과 미친듯이 휘젓는 팔뿐이었고 들리는 것이라곤 공포에 휩싸인 숨소리, 빈 공간에 울리는 발소리 뿐이였다.
미친듯이 달리자 저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그곳으로 달려가자, 마치 폐광과도 같은 어두운 동굴이 있었다. 빛은 그 입구 위의 조명에서 내뿜어지는 것이었다. 도망자는 곧바로 그곳으로 내달렸지만, 그의 내면은 제발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는 공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좁고 음침한, 습하디 습한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숨을 죽였다. 그는 그곳에서 극도의 편안함을 느꼈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겁에 질려 도망다니던 원인이던 누군가의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와도 그는 비좁은 동굴의 아늑함에 빠져있었다.
발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남자의 마음속은 오르골소리가 울리는 꽃밭이었다. 동굴 속이 물로 채워진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지만, 남자에겐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구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물은 가슴치까지 차올랐고, 남자는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곧 머리끝까지 물이 차올랐고, 남자는 현실을 깨달았다. 비좁은 공간, 앞은 보이지 않는다. 허우적거릴수도, 무언갈 붙잡을수도 없다. 코와 입으로 물이 미친듯이 들어오고, 기관지를 훓고 들어가 폐에 물이 차오른다. 몸을 움직일수도 없는 극도의 공포감에 빠지고, 몸은 굳어간다. 그리고, 그리고......
" 으허어억! 하아아... 하아 "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침을 삼킨다. 침대와 옷은 땀에 흥건하다. 바로 옆에서 한 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 여보, 정신이 들어? 도저히 안 일어나서 얼마나 놀랐는데! "
" 오, 사라... 미안해. 미안... 끔찍한 꿈을 꿨어. "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땀에 흥건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는 여자를 곧바로 놓아 주었다.
" 또 그 꿈이야? 잭, 그러지 말고 상담이든 병원이든 좀 가 보라니까 그래. " " 미안해... 먼저 자고 있어. "
그는 잠자기는 글렀다고, 잠시 바람을 좀 쐬다 오겠다며 외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벅 저벅, 고무 재질의 신발 밑창 아래서 모래가 콘크리트 블록에 쓸리는 소리만이 어두움을 채운다. 차디찬 새벽공기의 고요함에는, 한 남자의 발소리와 귓가에 맴도는 바람소리, 그리고 그 바람에 서로 스치는 나뭇잎들의 소리뿐이었다. 잭은 이러한 침묵 속에 잠겨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심장은 점점 느려지고, 머릿속은 잠잠해진다. 그는 그가 느끼는 이러한 안정감의 정점을 찍기 위해, 벤치에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 스으읍... 하아... "
담배를 천천히 한모금 내뱉어 보니, 그의 마음속을 혼란스럽게 했던 실뭉치들이 목구멍을 타고 공기중에 흩어진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지금 그 자신만의 공간에 있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편안했다.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그 꿈, 그 동굴 속에서 느낀 안도감을 떠올렸고 곧바로 극심한 불안증세가 도졌다. 눈은 번뜩 떠졌고, 기대있던 상체는 마치 미모사가 잎을 움추리듯 벌떡 일어났다.
" 앗 뜨..! "
넋을 너무 오래 놓아두었더니, 손끝에서 담배가 타고있던것도 몰랐다. 뜨거움에 놀라 손을 휘저었고, 그결에 담배가 떨어져 외투에 구멍이 났다.
" 최악이군... "
갑자기 현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짜증이 가득하다. 손은 아프지,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던 바람은 이제 외투를 신경질적으로 펄럭이고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았다. 그는 명상을, 혼자서 사색에 빠져 마음속에서 안도감을 얻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깨어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날씨는 쓸데없이 추웠고, 바람은 눈을 때린다. 생각하면 안 돼, 라고 생각할수록 꿈은 점점 더 선명해져 갔고 그럴수록 불안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속이 어지러운데 겉은 어련할까. 데인 부분이 아려온다. 분명 물집이 잡히겠지. 날도 춥고 더이상 밖에 나와있어 봤자 도움도 안 되니, 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피하려는 듯이 몸을 한껏 움추리고 외투를 동여매 귀가했다.
" 여보 왔어요? "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얇은 겉옷을 걸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먼저 자라니까. "
" 그런 표정을 짓고 나가버리는데 어떻게 잘 수가 있겠어? "
" .... "
" 차를 좀 끓여 놨어. 아직 따뜻할 때 마셔. "
그렇게 말한 아내는 테이블 위에 있는, 아직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찻잔을 가르켰다. 달짝지근 한게 진정되는 향이기도 하고, 아직은 마음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테이블에 앉았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아내표 차를 몹시 좋아했다. 사라가 맞은편에 앉자, 잭은 그녀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녀가 끓여준 차를 내려다 보았다.바깥 바람은 꽤 차가웠기에, 아직 따뜻한 찻잔을 양손에 감싸쥐고 담겨진 진한 홍차를 바라보았다. 눈처럼 하얀 잔에 담가 붉은 액체. 조명도 어두워 홍차는 더욱 진해 보였는데, 마치 그 모습이 피... 피가 찻잔에 가득 담겨 있는것 같군. 아직 따뜻한 피...
" ...잭? 잭?? 괜찮아? "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두 눈을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 어.. 어? 으응... "
이런 꿈을 꾼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부담이 크다.
" 나 아무래도... "
" 잭, 당신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해. "
" 어? 어.. 나도 그 생각 했어. "
" 일단 눈이라도 좀 붙여.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깐, 조금이라도 더 쉬어. "
과연 그가 더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야밤중의 고생은 정신적으로도 확실히 그를 힘들게 했기에 자리에서 잠자코 일어났다.
" 이렇게 늦었는데 미안하네. 차는 당신 마셔."
라고 말한 잭은 차를 겨우 한두모금 마시곤, 찻잔을 아내 쪽으로 밀어내더니 천천히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분좋은 아침은 아니었다. 잠도 잘 오지 아니했거니와, 또다른 악몽ㅡ이전의 폐광 입구를 꼼짝없이 서서 가만히 바라보는 꿈이었는데, 그 느낌이 마치 당장이라도 팔다리가 일그러지고 눈알이 튀어나올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기분나쁜 꿈이었다. 그중 최악은 뒤에서 발걸음이 점점 커지는데도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ㅡ이 겨우 잠에 들 때마다 잭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 하아... 미치겠군... "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테이블 위에 아직 따뜻한 커피가 올려져 있었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생각 외로 오래 잤구나 하는 생각에 테이블 위의 커피를 집어들자, 눌려있던 사라의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 푹 쉬어요. 그리고 상담 받는거 잊지 말아요! ]
그 밑에는 아마 상담사의 전화번호라고 생각되는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 ... "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애초에 자신이 상담에 솔직하게 임할거라고, 또 그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스스로가 무너질거라고 생각하기에, 또한 그만큼 괴롭기에 잭은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었다.
"여보세요? 에밀리 잭슨입니다. "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도저히 나는 잭이라고, 상담이 필요하다고 입을 땔 수가 없었다.
" 죄송합니다.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
그는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별수 없다. 방금 일어났으니까.
잭은 스스로에게 둘러대며 창문을 열고 테이블에 앉았다.
" 오늘따라 물안개가 짙군. "
이런 시간까지 집에 혼자 있어본적이 없었기에 어딘가가 불편한 적막감을 깨 보려고 혼자 중얼대 보았지만, 오히려 어색함이 늘었다. 괜시리 혼자 헛기침을 내뱉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또다른 그릇의 냅킨을 걷어내곤, 스콘 한 조각을 베어물었다. 그 영국식 요깃거리는 충분히 달콤했고 기분을 좋게 해 주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ㅡ직접 말하자면 입 안의 수분ㅡ를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잭은 메마른 입을 커피로 적실 때의 느낌을 무척 좋아했기에, 스콘도 좋아했다. 곧바로 나머지 세 스콘 조각들도 몽땅 먹어치웠다. 자고로 사람은 먹어야 한다. 일어나자 마자 빈속에 무언가를 결심하라 하면, 몸도 마음도 힘들다. 충분한 당과 카페인으로 기분이 한결 좋아진 잭은 다시 수화기를 들고 예의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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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작가
쮸뿌쮸뿌...
레나
무슨의민가요?
무지작가
어... 별 의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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