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분주의자 선언

작가의집 0 2,540
작가의집 이고깽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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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주의자 선언
 

"하나의 망령이 이 대륙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공분주의라는 망령이. 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들, 즉 왕들과 귀족, 교단의 장과 토호, 묘르라스지방의 과격 왕당파와 미가스의 정규군들이 이 망령을 사냥하기 위해 반분 동맹을 맺었습니다. 반왕(反王)을 부르짖는 모임치고, 권력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분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또 반왕을 지지하는 모임치고, 더 극렬한 반왕 조직이나 그들의 뜻에 반하는 적들에 대해 거꾸로 공분주의자라고 낙인 찍으며 비난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실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꺼흑!"

암송은 끝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끉기고 말았다. 예배당에서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 경건하게 손을 모아 '공분주의자 성명'을 암송하던 스타린 수도사의 수도복 후드를 누군가 뒤로 강하게 잡아끌었던 것이었다. 스타린 수도사는 급작스레 뒤로 넘어가는 몸을 바로잡기위해 자신의 팔을 허우적거리기도 하며 애썼지만 결국 스타린 수도사는 돌바닥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흑! 아흐으으... 대체 누굽니까? 암송을 방해하다니..."

수도사는 숱 많은 산발 곱슬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수도복 후드를 잡아당긴 사람이 누구인지 올려다 보았다. 낫과 망치 전위대의 대장인 케오르기였다. 케오르기는 이음새 틈새로 땀과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머리 보호구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지며 스타린 수도사에게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스타린 수도사 동지! 성명 암송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미가스놈들이 이제 무차별적으로 공성마법을 쏴대고 있어요, 보루가 곧 무너집니다. 어서 피하셔야 해요!"
"전투 시작 전에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 성 안에 있는 인민들과 낫과 망치 자경단의 투쟁기사들을 버리곤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후일을 도모하셔야지요 수도사 동지. 이대로 모두 죽어버린다면 결국 공분의 낙원은 오지 않습니다! 마르코스의 이름으로 낙원만을 바라보던 소중한 인민들이 지금 성벽에서 피를 뿌리고 있단 말입니다!"

후일을 도모하라는 케오르기의 말에 스타린 수도사는 몸을 일으켜 케오르기의 눈을 매섭게 쏘아보며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을 케오르기의 코 끝에 닿을 듯 지르고 일갈했다. 수도사가 뻗은 오른 손등엔 공분주의자들의 상징인 마법으로 아로새긴 붉은 낫과 망치가 빛나고 있었다. 왠지모르게 그가 기르고 있는 콧수염도 눈에 띄었다.

"공분의 낙원은 공분공산의 신인 마르코스께서 약속하신 낙원이오! 우리가 얻지 못한다면 미래의 우리 자손들이 공분주의 혁명과 투쟁으로 지배계급들을 벌벌 떨게 할것이고, 결국 쇠사슬 없는 낙원이 된 이 세계를 쟁취해 낼것이오!"
"....."
"붉은 섬광과 함께!"

두 손을 허공으로 쳐든 채로 경외감에 부들부들 떨며 말하는 수도사에게 케오르기는 반박할 여지를 느끼지 못했다. 이상론자의 이상적이디 이상적이기만 한 윽박지름에 질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케오르기가 예의상 다시 탈출을 권유하려던 찰나, 두 사람은 땅바닥으로 훼까닥 넘어지고 말았다.

"윽...!"
"마르코스시여...!"

날아오는 공성마법의 불덩어리에 맞고 건물이 충격을 받았는지 크게 진동하며 울렸을 것이라.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그렇게 생각한 케오르기는 고개를 떨구고 잠시 생각하다가 등 뒤에 멘 전투망치를 빼들고 스타린 수도사를 바라봤다. 수도사는 낫과 망치, 별로 장식된 공분의 심볼 앞에서 다시 무릎꿇고 성명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케오르기는 그런 수도사를 보며 고개를 설설 젓고 예배당 입구로 달려나갔다. 남은 낫과 망치 전위대원들이라도 이 성에서 빠져나가게 할 생각이었다. 이상은 이상일 뿐. 그는 온전히 이상만 좆아 공분주의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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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오르기가 본 바깥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도나 다름 없었다. 부상자를 짊어지고 치료사에게 옮기던 동지들이 성벽 밖에서 날아들어오는 마나의 불꽃에 맞아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며 소멸되고 있었고, 성벽에서 공성 사다리를 밀어젖히던 전위대 단원은 성벽 바깥으로 몸을 내밀자마자 화살에 꼬치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승산은 없었다. 이틀 전에 응원군으로 도착하기로 예정되었던 간톤 산맥 광산노동자 연합에선 감감 무소식. 그러나 그들이 느지막하게 온다고 쳐도 이 상황을 역전하는것은 무리였다. 공분주의자들의 시작지인 이곳에서 지금 공분주의자들의 멸망이 눈 앞에 드리워졌던 것이었다.

케오르기는 전위대원들이 쏟아져내리는 불덩이를 피하기 위해 마련한 작전기지인 지하 납골당으로 급히 뛰어들어갔다. 지금 당장 성 바깥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통해 모든 동지들을 탈출시키라는 명령을 내릴 참이었다. 납골당 안도 흙더미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등 무너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였다. 낫과 망치 전위대의 간부들은 격하게 흔들리는 횃불빛에 의존해 어떻게든 미가스 정규군들을 성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 하도록 방책을 마련하고 있었지만, 이런 악조건에서 무슨 방도가 생각나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는 듯 모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

"마오! 플라디미르! 상황이 어떤가?"
"전위대장님, 무사하셨습니까! 어... 그런데 스타린 수도사님은 어디계십니까?"
"그 경전 암송에만 정신팔린 이상주의자 새끼는 집어치워! 이곳에서 탈출한다!"

전위대원들은 갑자기 벙찐 모습으로 케오르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낫과 망치 전위대 대장이라는 사람이 공분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스타린 수도사를 신랄하게 모독함과 동시에 공분의 상징인 이 성을 버리겠다는 소리를 동시에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표정들을 본 케오르기는 와악 소리를 지르며 성의 지도가 놓여있는 탁자를 들고있던 전투망치로 단번에 박살내버렸다. 그리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 백치새끼들아! 전위대장의 말이 우습게 들리나?! 더 이상 동지들의 피를 희생할 수는 없다. 간부들은 전위대원들을 이끌고 성 안의 인민들과 동지들을 모두 수로로 이끌어! 그리고 남은 대원들은 지금 가장 방어가 취약한 지점으로 모여서 동지들이 모두 탈출할 때까지 여기로 들어오려는 미가스놈들을 가능한 오래 묶어둔다!"

간부들은 아직도 얼떨떨한지 뭐라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입만 달싹대며 옆의 동료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케오르기는 전투망치를 자기 앞에 있는 간부를 향해 겨누며 소리질렀다.

"크파르츠! 당장 치료사들이 있는 야전병원으로 가서 부상자와 치료사 동지들을 탈출시켜라!"
"저... 전 크파르츠가 아니라 마오입니-"
"닥쳐! 공분명(共分名)은 집어치워라! 당장 병원으로 뛰어가지 못해?!"

공분주의자가 받는 공분명과 본명을 들먹이다가 악에받힌 일갈을 들은 마오는 벽 옆에 기대어 세워져있던 피묻은 짚 갈퀴를 확 잡아채서는 납골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케오르기는 마오가 공분명을 받고 공분주의자가 되기 전에 밀밭을 관리하던 농노였다고 들었었다. 공분주의자의 기본적 원칙이 왕과 귀족등 권위의 부정임에도 공분명과 공분의 상징같은 새로운 권위에 눌려 있었던 것이었을까. 케오르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 생각을 떨쳐냈다. 자신이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이었다. 나머지 간부들에게 나머지 명을 하달하자, 간부들은 그제서야 어벙벙한 모습을 지워버리고 각자 부하들을 데리고 맡은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케오르기가 마지막으로 납골당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납골당에 바윗덩어리가 날아들어 격돌했다. 뼛가루와 흙가루가 휘날리며 전사한 동지들을 안치한 납골당은 최후를 맞이했다. 케오르기는 숨을 헐떡거리며 다음 행선지를 생각했다. 제법 큰 성에 속하는 이 부지 내에서 개구멍으로 파고들어온 적들이나, 그런 적들덕에 낙오된 동지들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들을 확보해서 같이 탈출할 셈이었다.

"동지! 조심하라고! 위를보시오!"

케오르기는 앞쪽에서 물바가지를 들고 건물의 불을 끄던 인민 하나가 자기에게 경고하는것을 들었다. 케오르기가 고개를 들자, 새빨간 불덩어리가 그의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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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포트- 텔레포트- 마르코스 쓰신다."

케오르기는 정신 없는 가운데 난데없이 들리는 류트소리와 공분 찬가때문에 자신이 드디어 공분의 낙원에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머리에 화살이 꽂힌 채 성벽에서 떨어지는 전위대원 하나를 보고 그 생각을 확 떨쳐버렸다.

"간톤 산맥에, 묘르라스 평야에, 이 대륙을 쥐락펴락"

그러나 이상하게도 류트소리와 '텔레포트 쓰시는 공분의 마르코스' 라는 이름의 공분 찬가는 계속 들려왔다. 케오르기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치료소였다. 아까 분명 마오에게 대피하게 시킨 그 치료소였다. 케오르기는 바닥에 깔린 거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이 일어나려는 그를 막았다.

"일어나셨구료 케오르기 전위대장 동지. 여긴 치료소요, 안심하시오."

예배당에서 공분의식을 치를 때 성가대를 지휘하던 음유시인 시므용. 케오르기 자신이 받은 케오르기라는 공분명도 이상하듯 모든 공분명이 이상한 이름이었지만 특히나 이상한 이름이라고 항상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크윽... 뭐가 어떻게 된거요?"
"하마터면 몸 반쪽이 아주 날아갈 뻔 하셨소. 근처에 있던 소화반 동지 한명이 공성용 마법에 직통으로 맞을 뻔 하셨다고 하시더구료."

케오르기는 자신의 몸이 멀쩡하다는 소릴 듣고나자, 아까내린 명령이 다시 상기되었다.

"마오! 마오 그자식이 여기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까?"
"계속 여기 있으면서 류트를 연주하며 사람들을 안정시켰지만 마오 동지는 본 적이 없는것 같구료."
"마오 이 개같은새끼!"

케오르기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으로 거적바닥을 여러번 내리쳤다. 그러자 시므용은 케오르기의 주먹을 살짝 잡아 멈추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하지 마시오 동지, 흥분하면 기껏 치료한 상처가 벌어져 출혈을 할수 있다고 치료사 동지가 말하였소. 부상자가 또 늘면 치료사 동지들이 곤란하지 않소."
"하지만...!"

시므용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게다가 마오 동지가 와서 대피하라고 하여도 치료사 동지들은 듣지 않았을걸로 사료되는구료. 아직 다친 동지들이 많지 않소이까."
"그래도 지금 당장 대피해야 해요, 시므용 동지! 더 늦는다면 모두 죽고맙니다!"
"대장동지 먼저 탈출하시구료. 우린 여기서 동지들을 더 보살피겠소."
"....."
"어서요."

케오르기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이 곳 사람들을 설득한다는것도 무리였다. 신성마법을 캐스팅하며 부상자를 향해 피투성이 손에서 빛을 뿜던 치료사들이 케오르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케오르기는 이를 악물고 수로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얼마나 거기 누워있었는지는 몰라도 성안으로 날아들어오는 불꽃이 잦아든 것으로 보아 미가스 군인들이 성문안으로 돌입하기 시작한것이 분명했다.

"간톤의 전법 신묘한 전법 마르코스 쓰신다-"

시므용의 청명한 노래소리가 치료소에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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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안에는 통곡만 가득했다. 비밀통로인것을 알아챈것인지 무엇인지 수로에는 미가스 군인들이 진을치고 있었고. 탈출하려던 인민들과 공분주의자 동지들을 창칼로 무참히 쳐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보호하려는 전위대원이나 무장한 동지들은 없었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기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케오르기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투 망치를 꼬나들고 저들을 향해 달려들으려 했다. 그러나 또 누군가가 그의 행동을 막아섰다.

"케오르기 대장동지, 그 쪽이 아니오. 다른 탈출구가 있소!"

전위대의 석궁수대에 속한 궤바라 동지였다. 케오르기는 자신의 팔을 잡고 뜯어말리는 그를 뿌리치려 애썼다.

"말리지 마라 궤바라! 저놈들을 한놈이라도 더 쳐죽이고 저세상으로 가겠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살리라고 명령한건 대장동지입니다."
"뭐?"

케오르기가 의아한 눈빛으로 궤바라를 쏘아보았다.

"마오와 블라디미르, 기밀선 동지가 토의한 결과 블라디미르 동지가 민간인 무리의 일부를 이끌고 수로로 도망가는 척 하여 미가스 놈들을 속이는 역할을 맡게되었습니다. 마오가 이끄는 전위대원들과 대다수 인민들은 다른 탈출로로 이미 탈출했습니다."
"....."

케오르기는 이런식의 결말을 바란게 아니었다. 죄책감이 몰려들어왔다.

"마오는 무리를 이끌고 간톤산맥을 따라서 고향인 북부 세라톤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험하고 긴 여정이 될테지만 공분의 대의를 위해섭니다."

케오르기는 전투 망치를 떨어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궤바라는 그런 케오르기를 그저 걱정스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오오-!"

학살의 현장에서 악에받힌듯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공분의 찬가 모음집엔 제 1장에 항상 수록되는 '카츄샤' 라는 생소하고 이상한 이름의 노래였다. 공분의 신 마르코스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한 최초의 선구자, '이름없는 인민'이 즐겨 불렀다고 하는. 민요같은 가락이지만 이 대륙 어느 지방의 가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노래가 들려왔다. 미가스 군의 대장인 듯한 사람이 피투성이 꼴로 노래를 불러대는 시므용을 자기 앞에 무릎 꿇히고 한손에 들어오는 석궁으로 그를 겨누고 있었다.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로오오옥-!"
"아하하하하하!"

적의 대장은 어깨를 들썩이며 요란하게 웃더니 석궁을 겨눠 시므용을 쏴버렸다. 무릎꿇여진 시므용의 가랑이 사이에 석궁의 볼트가 무자비하게 박히고 말았다. 시므용의 처참한 비명이 웅웅 울렸다. 미가스 대장이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다른곳으로 가버리자, 몽둥이를 든 반공분(反共分) 자경단이 몰려들어 시므용을 집단 린치했다. 케오르기와 궤바라는 눈 뜨고는 못 볼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비명만이 들리는 둘 사이의 침묵을 깬것은 궤바라였다.

"케오르기 동지, 가십시다. 어서요."
"알겠다..."
"언젠가 이 모든것을 제가 기록하고 말겁니다. 그리고... 후에 이룰 공분 낙원에서 이 과거를 모두가 기억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몰락귀족출신 노예였던 궤바라는 글 쓰는데 재주가 있던 전위대원이었다. 그 때문에 석궁수대에 속해있기도 했지만 종종 사서들을 도와 공분 경전등의 필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케오르기는 심지 굳은 그 각오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공분의 낙원을 위해."
"공분의 낙원을 위해."

케오르기는 낙원을 이야기하자 불현듯 과거의 일이 생각났다. 공분주의를 민가에 전파하고 다니다가 한 여관의 홀에서 만난 어눌한 말투로 말하던 용병 한명의 일이었다. 그 이상한 용병은 석궁의 볼트를 매만지며 그가 설파하는 사상을 듣고 이렇게 비꼬는 투로 말했다.

"공산주의는 잠꼬대야. 그놈들이 저주받을 책을 썼지. 빨갱이를 여기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낙원? 개한테나 던져주라고 해."

케오르기는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그를 비난하던 대부분의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 지금 불현듯 그 생각이 난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었다.

성벽의 개구멍을 지나 간톤산맥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숲속에 들어간 둘은 계속해서 뛰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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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분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인민들이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스타린 수도사의 암송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스타린 수도사는 암송을 마무리짓기 전에 낫과 망치 심볼이 놓인 제단으로 다가서서 심볼 뒤에 숨겨져 있던 촛대를 들어올렸다. 젊은시절 그에게 공분의 진리를 심어준 '이름없는 인민'이 이 예배당을 마르코스의 성소로 개축을 끝냈을 당시 건네줬던 촛대였다. '이름없는 인민'은 공분주의가 위기에 몰린 때, 이 촛대를 피로써 불붙인다면 '붉은 섬광과 함께' 공분주의의 낙원이 시작된다고 말하였다.

"공분주의자 수괴인 스타린이 저기에 있다!"

미가스 군인 몇명이 예배당 문을 차고 들어오며 외쳤다. 스타린 수도사는 뒤돌아서 그들을 마주보곤 왼손에 든 촛대의 뾰족한 끝으로 오른손을 겨누었다. 오른 손등에 새겨진 낫과 망치는 공분주의자들의 불꽃. 이를 결합한다면 피로써 불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잡아라! 살려서 데려오라고 명하셨다!"

스타린 수도사는 눈을 부릅뜨고 크게 외쳤다.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인민은 곧 프롤레타리아라. '이름없는 인민'이 그에게만 알려준 구절이었다. 스타린은 암송의 마지막 구절을 외치며 주저없이 촛대의 끝을 오른손바닥으로 찍었다. 붉은 섬광과 함께 낙원이 곧 시작될 것이었다.

-삐빅
-삑 삑 삑 삑삑삑삑삑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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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오르기와 궤바라는 갑자기 등 뒤에서 닥쳐온 뜨겁디 뜨거운 열풍에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케오르기가 뒤쪽의 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케오르기는 굳어버렸다. 성 안 전체가 화로안의 장작들이 불타듯 모조리 붉은 홍염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었다. 미가스 군인들은 이 땅을 아주 저주하며 없엘 작정인 듯 했다. 이정도 불길이라면 대 마법사 서넛은 모여야 일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케오르기는 반공분주의자들을 속으로 저주하고 저주하며 궤바라를 부축해 산비탈을 계속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대장정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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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 그 두번째. 으헣허.
 

* 위 글은 이상한 석궁수와 모험왕과 같은 세계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 공산주의를 찬양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판타지 세계에 떨궈진 공산주의자 한명이 일궈놓은 깽판을 쓰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 피드백과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댓글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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