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륙 이야기] 국가-라이엘기스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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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엘기스 대공국은 전쟁광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전쟁이 목표일 수 밖에 없는 국가였다.-'라이엘기스 사'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동부대륙 중북부와 북부의 경계에 있는 국가로, 레이먼 제국의 전신이자, 봉신국이다.

 

국가의 시작-망명왕자의 피난국가

 

그 시작은 레잉이 '균형자'달휴에게서 함락되고, 레잉왕국이 멸망할때, 레잉의 마지막 왕 로베르 3세의 서자인 로베르를 위그대공과 기타 신하들이 자기 식솔들을 이끌고 당시 변경지대였던 라이엘기스로 도망치면서 생겨났다. 당시 라이엘기스 변경백이던 페펭은 위그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당시 3세였던 로베르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자신의 영토의 일부를 로베르의 명의로 할양하면서 로베르를 수장으로 하는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탄생을 위그와 함께 선포했으며, 자신은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봉신으로 남으면서, 한편으로는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군 총사령관이 된다.

 

사실 굳이 왕위를 주장할거면 서출이라는 약점이 있는 로베르보다는 왕제이자 당시 왕위 계승 2순위였던 위그가 더 좋았겠으나,(실제로 페펭도 위그에게 로베르대신 당신이 직접 대공위에 오르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한적이 있다.) 위그 본인이 자신은 왕의 재목이 되지 못한다면서 거절했기에 로베르가 대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처음 형성된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뛰어난 군인이자 지휘관이던 페펭이 군사부문을 맡고, 학자기질이 강했던 위그가 행정과 기타를 맡는 형식으로 국가가 운영된다.

 

라이엘기스 변경백국 흡수

 

그러나 이연합은 시작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하는데, 페펭이 위그등의 중앙귀족들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국정을 진행하려 하는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결국 페펭은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지방귀족들에게 그들의 세액 감면과 약간의 자유보장을 담보로 협조를 얻어냈고, 그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대공궁을 포위, 결국 섭정직을 얻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위그는 가택연금, 그외 중앙귀족들은 모두 재산을 몰수한뒤 추방시키는것으로 국정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페펭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는데, 자신의 딸을 로베르랑 혼인시키면서 대공의 장인이 되고, 대공을 압박해 '라이엘기스의 군주'칭호를 얻어냈으며, 하이엔공국과 펭공국의 침입을 격퇴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서쪽 영역까지 강탈해냈다. 한편으로는 터그퍼산맥 이남에 있던 눈늑대족들을 모조리 그 너머로 몰아내고 그들의 영역을 강탈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평판은 그와 반대로 점차 떨어져갔는데, 우선은 로베르의 경우에는 엄연히 대공은 자신인데 봉신인 페펭이 '라이엘기스의 군주'칭호를 얻어낸데 대해 상당히 불만이 있었고, 지방 귀족들은 페펭이 그들의 특권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혹해 그를 지지했으나, 그가 점점 약속을 지키지 않기 시작하자 그와 반목하기 시작했으며, 페펭이 본보기를 보여준다면서 그와 사이가 나쁜 영주를 투옥하고 그의 영지를 빼앗자, 그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이를 벅벅가는 중앙귀족들을 비밀리에 초청하고 그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주어 용병단을 고용할 수 있게 도와주기 시작했다. 결국 페펭이 변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러 자리를 비운사이, 이틈을 노린 로베르가 페펭에 대한 토벌령을 내렸다. 각지의 지방영주들이 그들의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으며, 도망치거나 추방당했던 중앙귀족들이 자신의 자금을 박박 긁어모아 용병대를 이끌고 대공궁으로 향했다. 이들이 이끄는 군대는 순식간에 라이엘기스 변방백령을 모두 점거했고, 결국 급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온 페펭의 군대를 푸아르 회전에서 격파. 페펭도 거기서 전사하면서 그의 치세도 끝난다. 이후 잔당들은 페펭의 아들인 장을 중심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한달도 안되서 장이 암살당하면서 이들의 구심점도 사라지고, 라이엘기스지방은 로베르에게 완전히 장악된다.

 

'불꽃 갈기'로베르 

 

페펭이 죽고 잔당들까지 정리된 뒤, 정부는 어느새 18세로 훌쩍 자란 로베르가 통수권을 잡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삼촌인 위그가 섭정겸 궁재를 맡는것으로 형성된다. 그전까지 라이엘기스는 페펭과 그의 심복들인 군인들이 운영했기에 조금 막무가내식 운영이 많았는데, 페펭이 몰락한뒤, 로베르는 그 자리를 점차 그에게 충성하는 '관료'들에게 주기 시작한다. 이러한 관료들의 육성은 위그가 담당했으며, 이를 위해 최초의 대학이라 불리는 '라이엘기스 대학'을 설립한다. 위그는 이 대학의 초대 총장이자 초대 철학,법학 교수로 지냈고, 그의 훈련을 받은 이들은 훌룡한 행정가로서 로베르의 국정을 잘보조 했으면서, 그들의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역할역시 잊지 않았다. 라이엘기스가 지속적으로 재정에 큰 문제가 없던것도 로베르와 그의 후계자들이 재정의 관리라던가 세금의 징세율등에 있어서 모든것을 이들에게 일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베르는 군사적으로도 업적을 남기는데, 터그퍼 이북에 위치했던 눈늑대족들중 '세부온'이라는 자가 라이엘기스를 몰아내고 터그퍼산맥이남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자면서 이들을 규합해 라이엘기스를 침공하자, 몸소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그의 군세를 격파하고 세부온과 그외 그들의 주요 지휘관들(=당시 눈늑대족의 주요 족장,족장의 아들들) 40여명의 목을베어 광장에 걸어둔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눈늑대족은 한참동안 분열된 부족들을 통합한 구심체를 잃어버린체,발전할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해안가나 약탈하는 해적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고 만다.(이들이 이후 100년가까이 육로를 통해 터그퍼산맥너머를 약탈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때의 트라우마일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로베르는 장성하면서, 갈기의 노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는데, 그가 말을 타면서 갈기를 휘날리면 이모습이 마치 갈기가 불타는것같다하여 그에게 '불꽃갈기'라는 별명이 붙게된다.

 

로베르는 이후 그의 고모부인 펭 공작 '외눈박이' 장 3세의 공격을 격퇴하고, 하이엔 왕국과의 분쟁에서도 소소한 성과를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성과는 그의 말년에 있을것이다. 그가 어느덧 60세가 되었을때, 티겔 왕국은 왕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단 달휴가 죽고, 그의 장남인 달계가 왕위에 올랐으나, 왕위에 오른지 한달만에 의문사하고, 그의 동생인 달연이 왕위에 오른다. 당연히 그가 범인이 아니냐는 의심이 터져나왔고, 이때문에 티겔의 정국이 불안해진다. 이틈에 그는 티겔의 북쪽 변방을 공격해 일부지방을 점령한다. 티겔 정부는 이행위에 격분했지만, 티겔은 달연이 죽은지 이틀이 지나 달계의 동생이 달혜가 달계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고, 달혜마저 나흘뒤 그의 매부가 사주한 암살자에게 죽을뻔할정도로 정국이 혼란했었기에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달혜는 매부를 교수대에 매달고 여동생을 궁정에 감금시키는등 그럭저럭 혼란을 안정시키는데에는 성공했지만, 패륜아는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귀족연합의 전언을 받은게 문제였다. 이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달혜는 그전까지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했던 티겔에 귀족들의 세금을 깎고 이들을 위한 법들을 상당수 추진힌면서 귀족들에게서 왕에 대해 지지를 얻어내면서(물론 상당량의 뇌물또한 있었다.), 이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귀족들이 모이는 '의회'라는 곳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낸 달혜는 이때문에 극도로 떨어진 자신의 위신 확보를 위해 의회에서 앞에서 전술된 것들과 함께, 라이엘기스 토벌을 결의한다.(티겔 결의)

 

달혜는 8만의 병력을 이끌고 라이엘기스에 원정을 떠났고, 이는 얼마안가 라이엘기스를 공황에 몰아넣는다. 티겔과 맞닿아 있는곳이나, 티겔로부터 빼앗은 땅의 영주들과 주민들은 즉각 동요하기 시작했고, 일부 영주들은 티겔의 군세가 올때 이들과 저항하지 말고 즉각 항복할 준비를 하기까지 한다. 이에 로베르는 영주들에게 자신은 절대 라이엘기스를 버리지 않을것이며, 귀족들역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공문을 각 귀족들에게 내리고, 즉각 동원령을 내려서 7만의 병력을 소집한다.(이 동원에 대해서는 보통 사서에서 '왕은 자신의 백성들중 '무기를 들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데려왔다'라고 표현한다.) 이후 티겔의 군대는 라이엘기스로 진입하는데, 여기서 달혜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당시 티겔왕국은 하이엔 왕국과 동맹관계였고, 이에 간단하게 이들에게 통행권을 요청해 이들의 영토에 진입할 수 있었는데, 자신의 힘만 믿고 절차따윈 무시하고 이들의 영토에 불법으로 침법한데다가, 가는도중에 보급문제로 인해 하이엔 왕국의 영토를 약탈하고 만것이다.... 당시 하이엔 왕국은 중북부의 평야 상당수를 차지하는 견실한 중견국가였긴 했으나, 당장은 초강대국이었던 티겔 왕국과 싸울수는 없었기에 이에 항의의 표시로 대사만 보내고 우선은 화를 눌렀으나, 이는 이후 티겔의 외교에 크나큰 악영향을 끼친다.

 

이후 이들은 그곳을 통해서 대공령에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지방의 영주들은 로베르의 공문을 받기는 했으나, 티겔과 직접 맞서는건 자신과 자신의 영지만 빼앗길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고, 이에 재산(=영지)과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안전을 담보로 티겔에 투항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라이엘기스 대공에게 충성하면서 티겔의 항복제의를 거절한 성이 있었으니, 페펭의 외조카이자, 로베르가 페펭에 대항하려할때 첫번째로 군대를 이끌고 라이엘기스로 간 르나르의 볼로네성이었다. 달혜는 두차례에 걸친 항복제의가 모두 거절당하자, 볼로네성을 공성하기 시작하는데, 볼로네성은 예전부터 라이엘기스성과 함께 개척운동의 본거지역할을 하는 성중 하나였기에 함락이 쉽게 되지 않았다. 3주간의 공성이 잘 되지 않자, 달혜는 해당 성을 공성하는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병력 일부를 나눠 로나르가 그의 주군을 돕지 못하도록 했고, 이후 대공국의 서부로 가서 대공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그러나 달혜는 '대공의 군대를 격파한다'에만 집착해 로베르가 그의 군대를 유인한다는것도 알아채지 못했고, 무턱대고 앞으로 돌격을 하다가 후방의 병력과 차단되어, 각개격파당한다. 경호대가 목숨을 바친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지고 볼로네성 인근에 진을 쳤던 군대와 합류한 달혜는 급히 티겔로 돌아가려 했으나, 육로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하이엔 왕국쪽 통로는 하이엔이 미리 군대를 거기로 배치해 통과를 못하게 막았고, 그때문에 달헤는 아파르산맥을 넘어서 가는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매복병이 숨어있었고, 달혜는 겨우 목숨만 건져서 탈출한다.

 

이렇게 라이엘기스 토벌전은 티겔의 완패로 끝났다. 이후 로베르는 달혜에게 항복했었던 봉신들을 모두 용서하면서 이들을 초청해 라이엘기스 성내에서 승리기념 개선식겸 축제를 벌였고, 3일동안 벌어진 축제의 마지막 행사로 볼로네 백 로나르를 크게 치하하면서 그전에 정복했었던 상티겔의 북부 변방중 일부를 그에게 수여하면서, 로베르의 장자이자 상속자였던 로베르와(당시에는 '작은 로베르'라고 주로 불렀다. 다만 당사자입장에선 자신의 작은 체구를 비하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걸 알아서 그리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었다고 한다.) 로나르의 차녀였던 마리의 혼인을 선언하기도 했다.(다만, 약혼자체는 티겔의 침입이 없어도 했을거란게 중론.)

 

이후 로베르의 치세에 달혜의 침입이 2번 더 있었지만, 이들의 군대는 하이엔 왕국의 통행권을 얻어내지 못해 아파르 산맥을 넘어서야 라이엘기스에 겨우 진입할 수 있었고, 그때문에 티겔군은 산을 넘느라 지친 상황에서 라이엘기스의 군대를 맞이하거나, 산을 넘는 도중에 매복을 당해 격퇴당할 수 밖에 없었다. 

 

로베르 2세

 

'불꽃갈기' 로베르가 죽고 난뒤 후계를 이은 로베르 2세는 아버지를 닮아 노란빛으로 빛나는 갈기를 가졌으면서, 아버지의 대담함을 이어받았는데, 그가 아버지와 다른점은 계획을 실행하기전까지는 철저하게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계획을 실행할때는 굉장히 대담하게 행동했다는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티겔에게서 아파르산맥 이남 일대를 탈환하는 계획을 세웠을때 계획을 세우는데에만 10년이 걸렸지만, 정작 실현했을때는 반년도 안되어 계획했던 땅의 8할 이상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을정도다. 이후 로베르 2세는 계획의 완전한 성공을 위해 레잉을 함락하려하지만, 레잉의 성주였던 에른 게트(애결) 공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는데다가, 성안에 비축된 식량도 충분했었다. 함락을 위해 3달을 공성했지만 공성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그사이 티겔에서 급한대로 구원군을 꾸려 가르파 산맥을 넘었다는 첩보를 듣게 된다. 거기다가 하이엔 왕국의 게르투름이 라이엘기스 본토를 노리고 서부쪽 마을들을 약탈하면서 곧장 라이엘기스 성으로 달려온다는 말을 듣자, 별수없이 로베르는 티겔과 아파르산맥 너머 라이엘기스가 점령한 곳중 젠 강을 경계로 약 6할정도에 해당하는 땅의 소유권의 인정을 얻어내면서, 10년간의 휴전과 어느정도의 공물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게된다. 이후 로베르는 게르투름의 공세를 격퇴한뒤, 점령지의 관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정책을 입안하지만,(점령지의 호랑이족, 혼혈들역시 다른 사자족들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한다. 점령지에 세금은 당분간 다른 지역의 세금의 절반으로 한다.등) 중간에 병으로 인해 사망하고, 대공직위는 그의 장남 '광전사'루이에게 넘어간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끼여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이로, 민간전승등에도 그의 아버지나 아들은 지금까지도 소재로 자주 활용될 정도지만, 정작 그는 전승이 상당히 적게 나오며, 나온다하더라도 그저 '높으신 분'중 하나로 나올 정도이다. 이런 평가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겉모습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노란 갈기가 상당히 덥수룩한데다가 체구가 당당하기로 유명했던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와, 덥수룩한 붉은 갈기와 함께 큰키와 근육질의 몸매덕에 인기가 높았던 그의 아들인 루이와 다르게, 그의 노란갈기는 별로 나지 않아 오히려 피부색과 그리 구분이 가지 않아 갈기가 잘 눈에 띄지 않아 대머리로 오해받기 일수였고, 키도 그의 아들과 아버지와 다르게 상당히 작고 체구도 볼품없었다. 이때문에 민간전승이나 음유시인들의 노래에서는 그보다는 그의 아버지나 아들이 더 자주나왔다.(물론 정부차원에서 '사악한 티겔'이라는 선동을 하기위해서 '그러한 사악한 티겔에 맞선 영웅'으로 그의 아들을 띄운것도 크다.)

 

'광전사'루이

 

'광전사'루이는 로베르 2세의 장남으로, 전술되었듯이 덥수룩한 붉은 갈기와 탄탄하고 당당한 체구덕분에 인기가 굉장히 많았던 이였지만 한편으로는 기질이 급하고 전략전 안목이 부족한데다가 오만해 일군의 선봉대장이라면 모를까 국가 총통수권자로 그리 어울리지는 않은 이였다. 아예 로베르 2세가 그대신 자신의 동생인 렝스 백작 피에르나 차남 앙리를 후계자로 세울 생각까지 할정도였다. 그런 그가 대공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자 로베르 2세의 아내였던 '볼로네의 마리'덕분이었다. 그녀가 로베르에게 확실하게 장남을 계승권으로 해두지않으면 나중에 계승권이 엉망진창이 되어 국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로베르에게 조언했고, 로베르가 해당 조언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되어 계승권이 루이에게 가게 된것이다. 이때문에 루이는 항상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정인 볼로네 가문에 감사했고, 그때문에 그들에게 어느정도의 영지를 주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해 '볼로네 공작위'라는 작위를 생성해 당시 볼로네 백작이었던 알퐁스에게 주기까지 했다.이에 그들은 대를 이어 대공에 충성을 맹세했고, 항상 대공에게 큰힘이 되어주었다.

 

일단 루이 개인은 기질이 급하고 오만하긴 했으나 사악한 이는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점령지에 대한 그의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했고, 흉년이 들면 왕궁의 창고를 개방해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는등 선정을 배푼 기록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나 외교에서나 전체적인 판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이때문에 라이엘기스는 한참동안 어느정도 쇠퇴하게 된다.

 

우선 그가 한 첫번째 실책이자 가장 치명적인 실책은 외교적으로 그는 자신이 '레잉의 정당한 계승자'라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당시 라이엘기스의 확장속에 레잉은 점차 월경지가 되어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정복자인 호랑이족 영주들이 점차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레잉과 왕과의 사이가 미묘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만약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였다면 이를 놓치지 않고 레잉 공작에게 흥정을 시도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오히려 레잉과 티겔이 멀어진다는것만 보고 자신이 레잉을 되찾을 기회라 여기고 레잉근처에 다수의 병력을 배치했고, 이것때문에 오히려 레잉공국은 자신의 주군에게 공작의 딸과 당시 후계자였던 왕의 조카간인 달유간의 혼인을 제안할정도로 정부에 우호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이후 상당한 전략적 패책이 된다.(이는 티겔 왕국에 또다른 내분의 빌미를 주지만 누구든 예상할 수 있던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펭공국과는 이때 펭공작이 우호관계를 구축해보자는 요청을 무시했고, 오히려 '지금 당장 과거 레잉 왕국때처럼 우리에게 복속하지 않는다면 곧 힘으로 다시 복속시킬것이다.'라는 의도의 편지를 보내 펭공국이 티겔과 동맹을 하게 만드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두번째 실책으로는 그의 용맹함과 무투실력, 전술적 움직임은 의심할 수 없을정도로 굉장했지만, 전략적 능력은 좀 떨어졌는데, 그 스스로는 '짐은 전사가 아닌, 전략가다.'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전략적 능력을 맹신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그는 부장이나 참모들이 하는 조언을 자주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멋대로 지휘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이게 운이 좋아서 몇번 맞아 떨어진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패배의 결정적인 이유만 만들었다. 거기다가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지휘때문에 패배하자 이를 '운이 안좋아서 그런것일뿐, 자신의 판단이 틀린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했는데, 선정을 배푼것외에도 자주 지방순찰을 나가겠다고 국토를 돌아다녔으며, 거기서도 털털하고 격식차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때 이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지방순찰을 안다닐때는 대부분 전쟁터에 있었기때문에 행정상 업무는 대부분 그의 동생 앙리가 맡게 된다.

 

하여튼 그의 대에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티겔에 본격적으로 공세를 나서게 된다. 의외로 어느정도의 성과는 있어서 가르피 산맥 이남의 티겔군 8만의 병력을 대공이 직접 이끄는 5만의 병력으로 분쇄시켜버리고, 하이엔 왕 게르투름이 이끄는 군대를 격파하고 게르투름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는 게르투름에게 하이엔 왕국을 둘로 가르는 베르츠 강의 이남인 '하 하이엔'일대의 일부를 할양받고 다시는 라이엘기스를 치지 않는다라는 조약을 맺은뒤 레잉의 공성을 시작한다. 그러나 반년을 공성했는데도 레잉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고, 티겔의 지원군이 다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렇게 되자 루이는 병력을 둘로 나눠, 자신이 이끄는 대부분의 병력(약 4만)은 티겔을 격파하러 가도록 하고, 볼로네 공작이 이끄는 군대(약 1만 3천)은 레잉에서 뒤를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레잉 근처에 주둔시킨다. 결과적으로 이선택은 패착이 되어버리는데, 애초에 레잉의 군대는 기진맥진해서 라이엘기스군의 뒤를 칠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쓸데없이 병력을 둘로 나눈덕에 각 군대가 각개격파당하기 더 쉬워져 버린다. 아르맨 평원에서 벌어졌던 두군대의 회전에서도 그는 실수를 하는데, 적 지휘관이었던 달유의 나이가 겨우 17살정도밖에 안되는데 제대로 지휘는 할 수 있겠냐면서 적을 과소평가했고, 그결과 교전중 적이 일부러 전열을 물려 중군까지 노출된걸 보고 수상하게 생각하긴 커녕 '어린놈이 지휘하니 이런꼴이 나는게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였고, 돌격하다가 잠복해있던 적의 복병이 몰려오고, 후퇴하던 적의 전열까지 상대가 좌익과 우익에 휩싸인걸 보고 역으로 공세에 나서게 되어서 크게 패하게 된다. 한편, 겨우 목숨만 건진 루이는 라이엘기스로 도망가고, 홀로 남은 볼로네공은 대공의 패전소식을 듣고 더늦기전에 퇴각하려 했지만 툴렌이라는 곳에서 달유에게 딱걸려서 병력 대다수를 잃고 사로잡히는 꼴이 되버린다.

 

볼로네 공까지 사로잡히게 되자, 루이는 자신의 가장 큰 아군이 사라졌다는걸 깨닫고,급하게 티겔과 협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레이먼에서 협약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대공국은 티겔에게 로베르 2세때 탈환했었던 영역중 북쪽에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왕국에 할양하고, 대량의 배상금을 물고 10년간 공물을 바치는 대신에 대공국은 볼로네공 알퐁스의 송환을 얻어내는 조약을 맺게 된다. 

 

이전쟁의 결과, 티겔 왕국에선 루이의 군세를 격파한 영웅 달유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여론이 대거로 생겨나게 되고,(당시 왕이던 달혜의 실정도 한몫했다.) 그 결과 지방 귀족들의 4만의 군세가 티겔을 포위해 달혜를 압박했고, 결국 달혜는 왕위에 물러나고 달유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한편, 대공국은 이일로 인해 재정이 상당히 악화되고, 두 로베르가 100년에 가까운 시기동안 모아온 정예 병력들 대다수가 격멸되면서 군사력도 상당히 악화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대공국 바로옆에 있던 두국가들(펭 공국, 하이엔 왕국)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루이의 첫 위기

 

루이와 그의 동생 앙리가 어떻게든 악화된 재정을 원상복귀시키면서 박살난 군대를 다시 복구시키려고 안간 힘을 쓰려할떄, 하이엔 왕국의 시구름이 병력 5만을 이끌고 그의 형 게르투름이 빼앗겼던 땅을 되찾으려고 공세를 계시했고, 펭공작이 그의 외할아버지가 레잉의 왕제였던 장이라는 이유로 대공국의 전체영토를 노리고 곧장 라이엘기스로 달려가고 있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티겔의 군대가 라이엘기스의 가르피산맥 이남영토들을 공갸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즉각 이들의 공세는 라이엘기스로 알려지게 되었고, 루이는 펭공국의 군대가 티겔과 합류하기 전에 격멸할 필요성을 느꼈고, 알렝트라는 도시 인근 평원에서 펭공국의 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한다.(알렝트 회전) 이후 루이는 구원군을 이끌고 로댕성을 공략하던 티겔군을 공격해서 전멸시켜 버린다. 이후 시구름과는 로베르 2세때 빼앗었던 땅 일부를 돌려주는대신 서로간의 불가침 조약과 동맹을 맺는데 협의하고 돌려보내는걸로 끝내고(스비욜트 조약) 펭 공국과의 전쟁은 최종적으로 펭공국은 더이상 레잉 왕제 장의 혈통을 통한 상속권을 주장하지 않고, 티겔은 라이엘기스로 부터 다시 빼앗은 아파르 산맥 이남 영역중 북서쪽의 일부를 되찾는다. 대신에 펭공국의 독립을 대공국이 보장해주는 협약을 통해 끝난다.(알렝트 조약)

 

사실, 루이는 알렝트와 로댕에서 연합군을 격퇴한뒤, 하이엔 왕국과는 적당한 당근을 줘서 전쟁을 끝내고, (당시 하이엔 왕국에선 시구름이 원정을 간틈에 왕족들중 연장자들이 시구름의 조카이자 게르투름의 아들인 이바름을 추대하려는 반란을 일으킨 상황이었기에 적당한 보상만 주어지면 서로 평화조약을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남진해서 레잉의 고토들을 전부 탈환하려는 속셈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의 동생인 루이가 당시 재정상 전쟁을 계속 지속할 여력이 도저히 되지 못한다고 반대했으며, 왕의 가장 큰 아군이었던 볼로네 공까지 이를 거들었기에 별수 없이 루이의 말에 따라 펭공국과 화의를 하게 된다. 

 

잠깐의 긴장과 두번째 위기, 그리고 전사 

 

이후 5년간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국력을 안정시키고 난 뒤, 다시 한번 티겔을 칠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 생각은 티겔 역시 하고 있던 생각이었고, 이 두 국가의 갈등은 필연적이 되었다. 그러나, 두국가는 이후 10년간 서로의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는데, 그이유는 서로가 서로와 수도 없이 싸워보면서 1대1로는 서로 굴복시킬수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봉신들을 이용한 대리전에 치중했는데, 레잉 공작인 에른 테르가 아파르 산맥 이남의 일부영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왕국 북부의 여러 귀족들의 연합군을 데리고 라이엘기스를 공격했던것과, 툴렌 백작 '잔혹한' 장이 티겔 왕국 북부를 약탈하면서 그곳을 자신의 영지라 멋대로 선언하고 거기에 사자족들을 이주시킨걸 들 수 있다. 이러한 간접적 대립은 단 한번의 긴장으로 끝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이엔 왕국의 왕이었던 시구름이 사망하면서 일어난 하이엔 왕위계승전쟁이었다. 시구름은 총 15명의 아들을 뒀는데, 이들중 적자는 총 5명이었다. 문제는 적자들이 전부 전사하거나. 병으로 사망하거나, 기타이유로 요절하는 바람에 적자중 살아있는 자는 없었고, 그나마 차남이었던 뷔름의 외아들이었던 라그날이 살아있었기에 그가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시구름이 죽었을때 그는 겨우 8살이었고, 그의 서자들은 모두 살아있었으며, 시구름의 조카였던 이바름역시 살아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남부의 왕족들은 이바름을 지지한다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10명의 서자들은 각자 외국에 지원을 요청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되자 라그날의 외삼촌이자 왕국의 섭정이었던 디모요름 공작 '불꽃'의 이바름(구분을 위해 이 이바름을 화염공이라 칭한다.)은 라이엘기스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루이는 이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면서, 원군을 주려는 반응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에 화염공은 티겔에 지원군을 요청하는데, 이에 달유는 즉각 4만의 원군들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한다. 이에 남부쪽에 이바름을 지지하는 세력은 3년간의 격전끝에 진압되었고, 중부를 중심으로 한 서자들만이 투쟁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루이는 서자들중 가장 연장자면서, 수많은 무훈을 세우면서 그 보답으로 하이엔 왕국의 중견 영주로까지 우뚝선 게르투름을 지원한다는 방안을 세웠고, 동생 앙리의 반대를 무시하고 5만의 병력을 그쪽으로 원군으로 보낸다. 그러나 게르투름과 기타 서자들의 용병대, 라이엘기스의 연합군은 노르드란드 회전에서 티겔-하이엔 왕국 연합군에게 격파당해 패퇴당하게 된다. 결국 하이엔 왕위계승전쟁은 그 결과,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하이엔 왕국과의 동맹이 완전히 끊기게 되고, 한편으로는 이 전쟁으로 인해 티겔왕국은 하이엔-티겔 동맹이 체결되면서 산맥을 넘지않고도 라이엘기스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되었다. 

 

이로인해 달휴는 라이엘기스를 치기 가장좋은 기회를 얻었고, 달휴는 이를 위해 12만의 대군을 동원하고, 펭공국군 2만과 하이엔 왕국군 3만을 동원해 라이엘기스를 공격한다. 이에 맞서 루이는 그의 세아들과 함께 7만의 병력을 동원했고, 병력 열세를 뜷고 하이엔-티겔 연합군을 아퀴텐-리옹 회전에서 격퇴하는데 성공하고, 한편으로 앙리가 이끌던 임시군 3만은 질의 열세를 뜷고 펭공국의 '태양기병대'가 주축이 된 군대를 레느겐트에서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만약 여기서 라이엘기스가 화의를 요청한다면, 티겔의 군대는 물러갔을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루이의 문제가 도지는데, 그는 이틈이 레잉 왕국의 계승자로써 레잉의 정당한 영토를 되찾을 기회라 여겼고, 장남 필리프와 차남 루이 앙리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파르산맥을 넘어 그 이남을 공격한다. 그러나 산맥을 넘는중 티겔군의 매복을 받았고, 거기서 루이와 그의 세 아들과 볼로네 공작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이 전멸한다. 한편, 레느겐트에서 펭공국군을 격퇴한뒤 이후 그쪽 전선을 담당하던 앙리는 형과 조카들이 그들이 이끄는 군대와 함께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됀다. 이렇게 되자 티겔군이 어디로 오게될지는 뻔했다. 급하게 라이엘기스로 도착한 앙리는 후계자로 필리프의 아들인 '소년' 필리프를 급하게 왕위에 옹립시키고, 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부를 구축한다. 

 

'소년' 필리프와 앙리의 섭정기

 

새롭게 정부를 수립한 앙리는 어떻게든 레느겐트에서 펭공국군을 격퇴한 임시군들과 아파르산맥에서 격퇴당하고 남은 군대들등 그외 군대를 모아 최대한 게릴라전으로 일관 했지만 결국 라이엘기스에 티겔군이 오는걸 막지는 못했고, 결국 라이엘기스를 티겔군이 포위해 공성하는 상황이 된다. 절체절명에 위기에 대공국을 구한것은 병마였다. 행군도중 티겔 왕 달휴는 역병에 걸렸고, 사정 없이 퍼지던 역병은 병력들 대다수에 퍼져버린다. 결국 달유가 병마를 이기지 못해 죽고 동맹군이 모두 기진맥진하자, 달유대신 임시로 원정군을 맡던 레잉 공작 에른 보우드는 협상을 제시하게 된다. 

 

'아미에리옹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이조약으로 인해 라이엘기스는 아파르산맥 이남의 거의 모든 지방을 티겔과 펭공국에 양도했고,(각각 서부 해안가 일부는 펭공국에게, 그외지방은 티겔 왕국에게 넘어갔다.) 하이엔 왕국에게는 대공국의 동부쪽 영토중 일부를 할양했다. 한편으로는 대공국은 티겔에 무거운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대공국의 30년치 수입에 육박했다.) 티겔을 다시는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뒤, 그 보증으로 티겔 왕궁에 볼모를 한명 놔둬야 했다. 이 볼모로는 앙리의 사생아였던 '팔삭둥이' 샤를이 자신이 직접 볼모가 되겠다고 나서서 선정되었고, 조약 체결뒤 사절들을 따라 티겔에 머물렀다. 

 

그러나 앙리는 그의 아들을 걱정할 상황도 되지 못했다. 눈늑대족이 '에수안'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해서 터그퍼 산맥을 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에수안을 중심으로 집결한 눈늑대족은 터그퍼 산맥 동쪽 완만한 지대를 넘어 대공국의 북동쪽을 가격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진군하자마자 그곳에 있던 10여개 성의 영주들이 모두 투항해 버린다. 그나마 볼로네 공작만이 외로이 투쟁을 했지만, 에수안은 오히려 그를 내버려둔채 그곳을 우회해서 대공국의 남부로 그대로 나아가 버린다. 한편, 앙리는 이에 부랴부랴 병력을 모아 아미에리옹에서 에수안의 병력을 격퇴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패해버린다. 이는 대공국 남부의 귀족들에게 커다란 동요를 가져왔고, 일부 귀족들은 북동부쪽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에수안에게 공물을 선사하고 항복하기까지 한다. 한편 격퇴당한 앙리는 삼촌인 렝스백작 피에르의 영지로 도망쳤고, 거기서 삼촌의 환대를 받은 앙리는 패잔병들을 받아들이면서 병력들을 수습하기 시작한다. 한편, 피에르는 남부의 일부귀족들이 싸우지도 않고 에수안에게 항복했다는것에 격노했고, 이에 그런 귀족들을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을 자신의 성에 초대, 거기서 (사실상 반강제로)이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섭정이 군대를 이끌고 있는 렝스성으로 모이도록 한다.

 

한편, 에수안이 남부를 대강 정리하고 북상해 라이엘기스 코앞까지 도달할때, 피에르는 귀족들의 연합군과 앙리의 군대까지 이끌고(본래 앙리가 지휘하는게 맞을것이나, 그는 갑작스러운 형과 조카들의 때죽음과 볼모로 잡혀간 아들, 그리고 이어진 외적의 침입등으로 인해 정신이 많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이에 피에르가 그를 렝스에 묵게 해준뒤, 대신 병력을 이끌게 되었다.)  남쪽의 배신자들을 쳤다. 순식간에 그는 배신한 귀족들의 연합군을 격퇴했고, 대다수의 성들을 3달만에 함락시킨다. 이후 남쪽의 귀족들 대다수의 영지까지 몰수해둔 피에르는 요새의 방비를 다시 굳건히 하게 하고 병력 일부를 거기에 배치한 뒤, 북상해서 섭정인 삼촌없이 외로이 눈늑대족들과 맞서는 종손자를 돕기 위해 북상한다. 한편, 에수안은 사자족들이 다시 병력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동생 바로카에게 이들을 격퇴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바로카는 뷔렝에서 피에르에게 패배하고 전사하고 만다. 동생이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에수안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군과는 조금 다른 군대라고 생각하면서 만만히 볼 수는 없다고 생각을 바꾸었고, 이에 라이엘기스의 포위를 풀고 근처 그 동쪽 평원에서 회전을 준비하러갔다. 사흘 뒤 피에르의 군대가 라이엘기스에 도달하고, 거기서 하루종일 군대를 쉬게하고 보급을 받은 피에르는 다음날 에수안과 회전을 하러 갔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회전에서 피에르가 이끄는 연합군은 에수안의 연합군을 크게 격파하고, 그를 터그퍼 산맥 이북으로 쫓아내버린다. 쫓겨난 에수안은 이를 갈면서 눈늑대족들을 다시 규합해 터그퍼산맥을 넘을려고 했으나 노환으로 사망해버리고,(이미 대공국을 공격했을때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이었고, 사망했을때 나이는 61세였다.) 그가 그의 강력한 힘으로 일시적이나마 통일시켰던 눈늑대족들의 국가들은 에수안이 죽자마자 분열하고 독립해, 대공국을 공격할 여력을 잃어버린다.(그리고 그렇게 분열된 국가들은 모스코프 대공국의 서진에 쓸려나간다.) 

 

'부귀백'의 섭정기

 

이후, 앙리가 쇠약해졌다는 이유로 새롭게 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정부가 구성됀다.(앙리는 라이엘기스 대학 총장직으로 물러나 거기서 죽을때까지 있는다.) 피에르의 섭정기는 '소년' 필리프가 장성할때까지 6년 지속되는데, 이 시기에 라이엘기스는 그전까지 동북쪽에 자리잡았던 변경백국 시절부터 있던 토착귀족들과 남부에 자리잡았던 구레잉 왕국의 중앙귀족들이 대부분 작위를 빼앗겨 몰락하고, 그 자리를 피에르와 볼로네 공작등 기타 왕에게 충성하던 영주들이 나눠서 가졌는데, 이들은 외가든 친가든 왕족과 연관되있었던 자들이었기에, 이들을 '혈족'이라고 흔히 부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레잉 왕국의 부활에 아주 관심이 많은 자였으며, 그에 따라 대공국의 군사적 원정에 가장 큰 지지자였다. 물론 이 혈족들이 상당한 힘을 지닌것에 비해 대공 직할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한 편이었고,(단적으로 렝스 백작 피에르의 생전 영지는 대공보다 더 많아, '부귀백'이라는 칭호까지 가졌을 정도.) 그렇기에 대공들은 이러한 귀족들에게 끌려 다녀 원정을 진행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다만 피에르의 섭정기는 적어도 마구잡이 전쟁을 나선 시기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당시 피에르는 혈족들의 우두머리로써 주전파긴 했지만, 그들 내에서도 적어도 지나친 외정은 피하는 성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외정을 삼가면서  내정에 힘썼고, 6년뒤 다른 귀족들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의 성장을 이유로 자신이 직접 섭정직에 물러나는 등 권력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그는 후대에 (주로 황실에서 쓰인)사서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에수안에게 협력한 귀족들의 영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몰수한 영지를 왕령으로 해두지 않고 '섭정령'이라는 애매한 식으로 해버려 자신이나 기타 혈족들이 취하게 한 것을 두고 '고귀한 척 하지만 영주로써 욕심에 충실한 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황금'필리프

 

피에르 치하의 섭정기가 끝나고, '소년', 또는 '황금'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필리프가 대공직에 오르게 됀다.(황금이라는 별칭의 유래는 필리프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그당시 대공국에서 가장 뛰어난 음유시인이었던 페르디낭이라는 자가 필리프를 찬양하는 시에서 그를 '황금의 대공'이라고 칭한것을 대공국내 다른 예술가들이 따라하면서 퍼졌다. 필리프 본인은 이런 칭호를 꽤 좋아했는지 가끔 자기를 칭할때 '황금의 대공'이라고 하기도 했다는듯.) 필리프는 기본적으로 아버지를 닮아 전쟁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자였지만, 당시 정국을 주전파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이들의 말을 듣는 형식으로 가는 식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때 주전파는 피에르같은 온건파가 아직 힘을 잃지 않았기에, 필리프의 치세 초기 5년동안은 큰 원정이 없이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티겔 내부에서 전왕의 아내이자 섭정이었던 '에른 베르트'와 그의 오빠인 레잉 공작 '에른 보우드'를 중심으로한 '북서부파'와 여쿨 공작이자 왕족이었던 '달규'와 그의 세아들을 중심으로 한 '동부파'간의 대립이 달규의 암살로 폭발, 대규모 내전이 일어난다.('대내전') 이 내전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티겔 왕국의 영역중 최북단쪽에 라이엘기스 대공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댄 대부분의 귀족들은 북서부파의 편을 들지 않고 동부파의 편을 든 것이다.이에 동부파의 우두머리인 달규의 세아들들은 이들을 이용해 북서부파의 군대의 일부를 묶어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이렇게 되자 에른 보우드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른 베트 왕후가 직접 사절을 보내 필리프에게 사절을 보낸것이다. 필리프에게는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고, 즉시 요청을 받아들여 북부에 동부편을 든 호랑이족 영주들을 몰아내고 그쪽을 아예 차지해 버린것은 물론, 오히려 더더욱 남하해서 북서부파편을 든 귀족들의 영지까지 대부분 합병해버린다. 내전에서 명성을 쌓아 '용담공'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됀 보우드 공은 필리프에게 땅을 돌려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당연히 필리프는 무시해 버리고, 보우드는 이에 굉장히 화를 내었지만(그가 내지른 소리가 성밖에까지 들렸을 정도라는 얘기가 있을정도.) 내전으로 인해 국력이 반이상 날아가버렸기에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그의 시기때 더욱 남하해, 펭공국을 다시 아파르 산맥 일대로 몰아내 버렸고,(북쪽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산지였던 펭공국의 특성상 비옥하고 평야인 아파르산맥 이남 영역은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시기때 빼앗겨버려서 국력이 대다수 약화되어 버린다.) 결국 옛 레잉 왕국의 영역의 60퍼센트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필리프는 굉장히 예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는데, 이때 사실상 대공국의 수도가 된 레이먼(공식적으로 수도는 라이엘기스였으나, 필리프시기에 되찾고 난뒤 대공들은 오히려 대관식이나 몇몇 행사를 제외하고 사실상 내내 레이먼에 머물렀기에 실질적으로 수도로 여겨졌다.)에는 예술가들이 득실거렸다.(대공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선물해 그의 호의를 얻어내기만 하면 대공국에 연금을 받으면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레이먼에는 지금도 궁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푸아튀르 궁전'이 세워졌고, 수많은 아름다운 조각들과 그림들이 대공에게 헌정되었다. 하루가 머다하고 궁전에는 대공을 찬양하는 곡들이 울렸다. 한편으로는 이때 대공에게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들은 오히려 방향을 선회해서 서민들의 일상을 그려낸 작품들을 만들어내거나, 대공이 아닌 다른 귀족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려 했다.

 

이때 대공국은 티겔 왕 베르코 1세와 대립하다가 영지를 회수당하고 추방당한 레잉 공작 '에른 바르단'을 지원해 그의 영지를 다시 되찾게 도와주고 대신 복속을 얻어내 레잉을 간접적으로나마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하이엔 왕국과 모스코프 대공국과의 침공도 막아내는등 명실상히 중북부의 최강국으로써의 위치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는 이때 비옥한 중북부지방이 다시 돌아왔기에 대공국에 세금이 크게 늘어나고, 티겔왕국과 보호를 해주는 대신 공물을 일정량 받아내는 '슈데옹 조약'을 체결해 사실상 속국화에도 성공하는등 사실상 문화적,경제적,군사적으로 중흥기를 맞는다. 

 

침묵의 대공

 

필리프가 43세의 나이로 죽고 그의 아들인 루이 필리프가 왕위를 이었다. '침묵의 대공'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전사체질이었는데, 기질이 난폭해 여려모로 그의 증조부인 '광전사' 루이와 비슷했다. 그가 그의 증조부와 다른 점이라면 루이는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좋아하면서 한편으로는 문학을 장려해 '기사도 문학'이 중북부에 널리 퍼지는데 공헌했으며 본질적으로 호방한 면이 있어 부하들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지만, 그는 그런면도 거의 없었다는 점일것이다. 그는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만이 통치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던 자였고, '시끄러운 것들'이라면서 음악가들도 굉장히 싫어했으며, 그림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재위기간동안 레이먼에 있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추방당했고,(단, 그가 유일하게 조각품들만은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일부 조각가들은 남았다.) 대공국에서는 자고 일어나보니 군에 강제로 입대해 직업군인이 되어있었다는 괴소문이 횡행했다. 한편으로 그전까지 꽤나 널널했던 편이었던 세금이 2~3배로 한번에 늘어났고, 이는 하층민들과 귀족들에게 상당한 불만사항이 되었다. 한편 티겔 왕국과 레잉공국이 바쳐야 되는 공물도 갑자기 10배로 늘어났고, 이들은 공물이 갑자기 급속히 늘어난것을 보고 경악하여 공물을 바치는걸 거부하고 사실상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침묵공이 직접 그걸 진압하려 나섰고, 하이엔 왕국과 연합한 레잉 공국을 물리치고 레잉을 왕령으로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티겔과의 싸움에서는 오히려 센티겔 총독 계현에게 패배. 되려 목숨을 잃을뻔 하다가 그의 동생 앙리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후 그가 재위한 3년간 수많은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이를 보다못한 루이 필리프의 동생인 앙리가 반 루이 필리프파 귀족들과 내통하여 루이 필리프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침묵공은 그이후 감옥에 갇혔다가 3년뒤에 풀려났고, 동생이 형을 위해 마련해준 조그마한 영지에서 독신으로 살다가 10년뒤에 쓸쓸히 죽는다.)

 

불운한 지도자 앙리

 

앙리는 여러모로 자신의 아버지와 닮았던 인물로, 형과 다르게 예술을 좋아하고 폭압적인 통치를 금하는 성격이었다.(다만 형제간 사이는 루이 필리프가 즉위하기 전까지는 좋았던 편이라고 한다.) 그는 루이 필리프 시기 갑자기 늘어났었던 세금을 다시 원래대로 복귀시키고, 영지를 빼앗기고 추방당했었던 레잉 공작을 다시 초청해 그를 심심치 않게 위로한뒤, 그의 아들과 자신의 막내 여동생의 혼인식을 성대하게 열어서 그의 호의를 산뒤 그에게 마르게르텐 백작위를 수여했다. 레잉 공작은 레잉을 돌려주지 않은것에 불만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지만, 대공국의 계승 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수여받은 영지로 물러났다. 이후 루이 필리프 시기 추방당했던 예술가들에게 다시 복귀를 요청하는 문서를 곳곳에 보냈으며, 아버지의 예술 장려정책을 다시 실시했다. 이에 추방당했던 예술가들이 다시 대공궁으로 돌아오기 시작해 침묵공 시기 덩그러니 조각들만 남은 조용한 분위기때문에 '무서운 분위기까지 난다'라고 시종들사이에서 소문이 났던 대공궁은 다시 음악과 예술가들의 잡담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그리고 이시기에 앙리는 레잉 왕국의 복원을 대대적으로 선포하고 대관식을 올리려고 했다만, 하필이면 대관식 전날에 갑자기 독감에 걸려서 실패(...) 이후 시간이 날때마다 대관식을 올리려 했다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패하게 된다.

 

앙리의 시기때 라이엘기스는 더더욱 확장을 시도했는데, 하이엔 왕국과의 싸움에서는 비록 제르돈란드에서 격퇴당해 하이엔 왕국을 완전히 꺾을 수는 없었지만 유리한 조건에서 그들과 강화를 맺어 왕국의 남부 일부를 빼았을 수 있었고, 상티겔과의 전투에서는 대공이 직접 군대를 이끌다가 왼손이 잘리는 큰 부상을 입긴 했지만 결국 슈데옹등 레잉 왕국 영역의 땅을 대부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레잉 왕국 복원을 하려고 했지만, 왼손에 상처에서 파상풍으로 추청되는 병이 도져서 결국에는 즉위한지 4년만에 사망한다.

 

샤를의 즉위와 제국 창립론의 대두

 

그렇게 앙리가 죽고 난뒤 그의 아들인 3살의 나이로 샤를이 대공직을 맡게 되고, 섭정직은 부귀백 피에르의 손주이자 앙리의 사위인 로레즈 백작 알퐁스가 맡게 된다.

 

이시기 대공국을 휩쓴것은 '제국 창립론'이었다. 본래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레잉 왕국의 복원을 위해 임시적으로 세워진 국가였으나, 황금공시기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제 레잉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왕국을 세워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혈족내에서 레잉 왕국 복구론의 대표자였던 부귀백 피에르등이 노장파가 노환으로 사망하거나 점차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제국창립론을 최초로 주장하였던 피에르의 차남인 로레즈 백작 기 등이 정국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제국 창립론이 힘을 얻어가기 시작한다. 루이 필리프의 시기때 잠시 시들해졌던 이논의는 앙리의 즉위 이후 다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앙리가 적극적인 레잉 복구론자여서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앙리가 요절한뒤, 기의 아들인 알퐁스가 섭정직을 장악하는데 성공하면서 제국 창립은 본격적으로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목표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알퐁스는 우선 제국을 창립하기전에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려고 했다. 본래라면 레잉왕국의 복원을 선포하는게 가장 이상적이었겠으나, 알퐁스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긴 위해선 새로운 왕국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에 제국창립론자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레이먼을 수도로 한 '레이먼 왕국'이 선포되게 한다.(단, '라이엘기스 대공'작위는 여전히 남겼다.) 그러나 이 결정은 아직까지 꽤 남아있던 레잉복구론자들의 불만을 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섭정 알퐁스의 평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루이 필리프 사후 다시 독립하여 대공국과 적대관계로 돌아선 티겔과의 전투에서 그리 좋은 전과를 내지 못했고, 센티겔 총독 계형과의 전투에서 알퐁스가 직접 이끄는 군대가 대패하여 슈데옹등 남부지방의 일부를 빼앗기기까지 한다. 하이엔 왕국과의 전쟁도 좋은 성과를 내지못하여 오히려 동북부 지방을 뺴앗기는등 패배가 계속되자, 알퐁스가 섭정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었고, 결국 알퐁스의 사촌인 렝스 백작 알베르가 사촌형의 자리를 빼았고 새 섭정이 된다.

 

알베르 시기에 왕국은 전투를 하기보단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한 국고문제와 인력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쟁을 삼가면서, 방어선을 정비하는데 온힘을 쏟은 시기였다. 알베르는 우선 티겔 왕국과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슈데옹을 돌려받는 대신 그외 티겔의 동북부 지방을 돌려주었고, 20년의 휴전협정을 맺었다. 이후 알베르시기에는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은 없었지만, 하이엔 왕국의 견제를 위해 등퍼산맥너머에 있는 츄프 왕국과 첫 교류를 맺은걸로 나름대로 사서에 이름을 남겼다.(다만 츄프왕국과의 첫교류는 별 의미를 남기지 못했고, 이후 츄프왕국과 하티겔왕국과의 동맹관계로 들어가 대공국의 후신인 레이먼 제국과 적대관계가 되어 결과적으로 큰 의미를 남기지는 못했다.)

 

샤를 대제

 

알베르가 15년동안의 섭정기를 마치고, 그의 아들 샤를이 20세의 나이로 지도자를 맡게된다. 섭정기때 샤를이 너무 유약하다면서 그의 즉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약간 있었지만, 샤를은 그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적극적인 외정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하이엔 왕국의 위협을 근절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하이엔 왕국과의 30년에 걸친 전쟁을 시작했다. 중간에 하이엔 최후의 명장인 에이릭에게 몇번이나 격퇴당하고 한번은 죽을뻔까지 했지만, 최종적으로 팔츠 회전에서 에이릭의 군대를 대파하고 에이릭까지 사살. 이후 북상해 결국 라인랜드 조약을 통해 하이엔왕국을 완전히 병합하는데 성공한다.(다만, 하이엔지방의 하이에나족은 절대로 사자족 통치자들에게 굴종하려하지 않았고, 이후 꾸준히 반란을 일으킨다.)

 

노년에 접어든 샤를이 마지막으로 한것은 자신들의 수도인 티겔(현재의 태겡인근의 구티겔쪽.)인근만 겨우 지키면서 명맥을 잇고 있던 티겔 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하이엔왕국을 멸망시킴으로써 동부대륙 최강자 자리에 오른 레이먼 왕국을 티겔이 막는건 불가능했고, 결국 티겔이 함락되고 티겔의 마지막 왕인 에르두른 2세과 그의 형제들은 저잣거리에서 사형당하면서 티겔왕국은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티겔 왕국은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부인인 아르든 백작부인이 에르두른의 아이를 밴 상태로 급하게 남쪽의 자신들의 봉신국인 '센티겔 총독부'로 도망가게 되면서 기적적으로 왕가의 혈통을 잇게 되고, 당시 센티겔의 총독이었던 '계로'가 아르든 백작부인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차기 왕으로 삼고, 자신을 왕국의 섭정으로 하는 것으로 국가를 다시 정립하게 됀다. 이후 이 센티겔(현재의 티겔)을 중심으로 한 신생 티겔정부를 '남티겔 왕국'이라고 부르고, 그전까지 있던 티겔왕국을 '북티겔 왕국'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샤를은 펭공국과 조르쥬부르 조약으로 펭공국을 복속시키면서 대륙 중북부를 사실상 통합시켰고, 대륙을 통합시킨 샤를은 그마지막 작업으로 레이먼에서 황제로써의 대관식을 치뤄 황제가 되는데 성공한다.

 

레이먼 제국 성립이후

 

이후 라이엘기스 대공직은 황제의 보조작위가 되어 온존하다가, 샤를이 죽기전 본래부터 있던 북부의 귀족들과 영토가 확장되면서 새로 부상하는 남부의 귀족들의 갈등이 심화될것을 우려, 그의 둘째 아들 로베르에게 라이엘기스 대공 작위를 내려 자신의 북부영지와 근처(정확히는 아파르 산맥 이북) 영주들의 종주권을 맡긴다. 이후 로베르는 그의 형이자 레이먼 제국 작위를 상속받은 루이를 보좌하면서, 북부 토착귀족들의 반남부 감정을 적절히 통제했고, 북쪽에서 급속도로 흥기하던 아라스제국의 침입을 여러번 물리쳐 '강철'이라는 칭호를 얻어낸다. 또한 루이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섭정직을 맡아 제국내에 대표적인 '황제 절대자주의'의 신봉자로써 신임 황제 샤를을 교육했고, 그결과 샤를이 '황제절대자주의'에 입각해 제국의 국력을 말아먹게 하는데 공헌했다(....)

 

이후 라이엘기스 대공국은 로베르의 후예(그중 직계)들이 관리했는데, 이들은 제국의 북부 변방을 지키면서 아라스제국의 침입을 여러차례 막아냈고,(때때로는 황제의 지원 없이!) 제국의 대표적인 주전파로써 황제의 확장을 장려했다.(이런면에서 제국 내에 대표적인 주화파였던 아퀴텐-볼로네공국과는 대대로 사이가 좋지못했다.) 그리고 로베르의 방계들은 제국내 수많은 관직에 오른 이들이 많았고,(대표적인 예로 제국 재상을 맡았던 '무쇠코' 샤를은 로베르의 증손자인 로베르 2세의 삼남이다.) 한편으로 직계쪽은 대대로 제국이 외부원정을 나갈때 그것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의 역할을 맡았다.(물론 이에 대해 불만이 없던건 아니지만 능력은 전부 인정했기에 아무도 거기에 대해 지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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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6 기스카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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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웃으면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잉여!....크킹이랑 유로파 좋아하고 시공이랑 시계도 가끔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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