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

역설페인 1 2844

*이 글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스포일러를 여럿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중 주요 스포일러가 모여있으니 스포일러가 싫으시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소설을 처음 읽은건 대강 고2때쯤으로 아는데...지금와서 읽으니깐 이것저것 감회가 상당히 새롭더군요. '그래 여기선 얘가 나오지.' '아 얘가 여기서도 나왔네.' '이렇게 흘러가겠군.' 뭐 대강 이런식으로? 앞날을 안다는게 이렇게 재밌는건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까먹고 있었던게 두억시니는 기억속에서도 상당히 괴기스러운 그로테스크 생물로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다 보니 원래 모습보다 몇배는 더 괴기스럽더군요(....) 귀가 한쪽에만 4개가 달려있다라던가, 다리가 세개달려있다던가하는것들을 머릿속에 구체화시키려드니...어휴... 뭐, 이미 손하나가 사타구니에 달려있는 애도 있긴 하니... 다만 유해의 폭포의 변형은 상상할수록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더군요. 손가락들이 뭉쳐서 뱀형태가 되면서 그 손가락들 마디마다 눈이 달려있는 모양새라고 작중에서 묘사하니...텍스트를 토대로 모습을 생각하려다가 생각하는걸 그만뒀습니다(...) 도깨비들의 도시인 즈믄누리나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도시인 하늘누리, 소리도 그렇고 '새 시리즈'에서는 전체적으로 텍스트로 그림으로는 떠오르게 하기 힘든 이미지를 표현하는거 같습니다.(작가의 전작인 '드래곤 라자'시리즈나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그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던걸로 기억해서....)

 

그리고 책을 다시보면서 대강 예전과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게 좀 있는데, 옛날에 이작품을 봤을때는 해당작품에서 왕을 은유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무엇을 뜻하는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단순히 마지막에 사모가 케이건에게 했던 말을 통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자'정도로 대강 넘어갔죠. 그런데 최근와서 이 소설을 다시 보기 시작하니 이 눈물을 마시는 새가 무엇을 뜻하는건지 대강 알거 같더군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작중 주역인 케이건 드라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다.' '왕이 사람들의 눈물을 마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정해진다.'  또한 작중에서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왕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를 두고 전 '눈물'과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의미가 '눈물은 인간에게 있는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전통적 관념이고, 눈물은 마시는 새는 이러한 것들을 희석시키거나, 없애버리는 군주의 강력한 권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서 잠시 이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소설의 배경인 아라짓 대륙은 대륙을 지배하던 강력한 국가인 아라짓 왕국이 나가에 의해 멸망한 이후 각지에서 지방 세력들이 흥기하던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의 세력은 특별히 대륙 전체를 지배할만한 강력한 세력이  없기에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각지에서 대립중이고, 외부의 위협이라 할만한 나가는 냉혈동물이라 특정지역에서만(작중에서는 '한계선을 넘어가면'이라고 표현합니다.) 살 수 있기에 외부의 침략에 맞서 자기들끼리 뭉치는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각지역에서는 '제왕병자'라 부르는 필부들이 부랑배 수십명 데리고 왕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칭하는 자들이 넘치는 혼란한 상황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왕병자 휘하에 부하들이 멀쩡할 리 없습니다. 강한 적을 만나면 몸이 굳어버리고, 무섭다 싶으면 도망치기 직전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왕병'은 필부들외에 한지역을 다스리는 군주들도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작중에서 묘사된 바로는 자보로 마립간 지그림이나, 발케네 대족작 코네도 빌파정도가 해당됩니다.) 이들이 다스리는 군대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 크게 다르지는 않으며, 무엇보다 이들은 그 지역의 체제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그림 마립간은 자기 부하들에게 '지그림 아저씨'라는 말이나 듣고, 자기 큰아버지한테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칼집으로 맞는 모습을 보입니다. 코네도 빌파는 지그림수준으로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명색이 왕을 노리는 사람이 '발케네식'으로 옛 아라짓 왕국의 상징인 '바라기'라는 검을 훔치려다가 걸려서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 대호왕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아라짓 왕국군이나, 후속작 '피를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아라짓 왕국이 발전해 생긴 '아라짓 제국'의 군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자살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작전이라도 왕의 명령이니 무조건 적으로 따르며, 왕과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우는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두려움, 망설임의 상실.'과 함께 또다른 중요한게 '전통적 관념의 쇠퇴, 붕괴'입니다. 

 

예를 들자면,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 발케네 공작 락토 빌파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면서, 아라짓 제국의 황제인 치천제가 점령지에 내린 명령은 '발케네인들중 아주 어리거나, 늙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남녀 가리지 말고 죽여라.'입니다. 늙은 자들은 얼마 못가 죽을테고, 어린 아이들은 얼마안가 점령지에 제국인들이 새로 이주하면 그들의 옛문화를 잊어버리고 중앙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테니까요. 또다른 예로는 오만하고 강력해 무리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레콘들의 '군대'를 조직한걸 들 수 있습니다.(작중에는 아예 이를 '가짜 레콘'이라 언급할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라짓 제국의 황제 치천제가 고대 아라짓 왕국의 나가잡는 부대였던 '아라짓 전사'라는 이름을 자신의 호위 나가 부대에게 하사한걸 들 수 있겠습니다.(작중에도 전통에 대한 모욕이라 합니다.) 이러한 전통의 붕괴와 쇠퇴, 왜곡 역시 왕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것'이죠.

 

왜 이걸로 사람이 비정해지는거냐고 물을 수도 있으실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는 도덕이나 예의등이 역시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또는 왕)은 자신의 권위를 통해서 이러한 도덕을 붕괴시킬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왕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곧 '왕이 사람들의 눈물을 더 자주 마실수록', 국가내에선 병폐,혹은 모순이 넘치게 됩니다. 결국 '눈물을 마시는 새'는 죽어버리게 되는거죠. 그러나 한국가가 죽어도 그 국가의 지정학적, 혹은 '국가 그 자체'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건 바로 단일체로써의 국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일뿐이지만, 개념으로써의 국가는 '피를 마시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피를 마시는 새'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그대로 '피'입니다. 국가를 멸망시키는 피, 국가를 유지시키는 피 말이죠. '눈물을 마시는 새'를 죽인다 하더라도 국가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피로 인해 사람들은 국가라는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것조차 상상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국가라는 체제 그자체를 뛰어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작중 예를 들자면, 치천제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 이후, 아라짓 제국은 사실상 멸망하지만, 아라짓 제국이라는 개념과, 그 휘하 속국들은 전부 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인간은 결국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가 되는데, 이러면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다섯번쨰 종족'(정확히는 첫번째 종족)이 국가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완전히 각성해 '개념'이 되버린 것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영도작가님 신작좀 내주세요...이대로면 완결이 제대로 안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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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6 기스카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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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웃으면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잉여!....크킹이랑 유로파 좋아하고 시공이랑 시계도 가끔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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