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요호 사건에 대해서 이런 자료도 있네요.

비잔뽕이부족합니다 2 2072
1875년 9월 21일에 일어난 운요호사건은 일본이 조선에 대해 무력 강압을 취할 수 있는 계제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발행위였다... 운요호 함장의 1차 보고서에 따르면...운요호는 초지진 포대와의 교전에서도 불리함을 면치 못하여 제2일에 아침부터 총력을 기울여 초지진 포대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하룻밤을 보낸뒤 제 3일에 영종도를 기습하고 노획물을 챙겨 나가사키로 귀항한것으로 밝혀져 있다... 1876년 1월에 강화도에 온 구로다 기요타카 사절단은 처음에는 포격사건에 대해 문책하려고 들었다... 강화도 조약 협상에서 조선측은 일본 측이 준비해온 안에 대해 최혜국 조관을 뺄것을 요구하고 나머지 12개 조관 중 9개 조관에 대한 자구 수정을 요구할 정도로 능동적으로 임하였다.(후략)

왜 대한제국의 역사를 폄하하는가-이태진,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전의 황제국

운요호 사건은 오히려 일본이  선빵쳤다가 이빨이 제대로 안박혀서 튄거에 가깝고(...)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는등 전체적으로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이던데, 어떻게 평하는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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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6 기스카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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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웃으면서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잉여!....크킹이랑 유로파 좋아하고 시공이랑 시계도 가끔씩 합니다.

2 Comments
paro1923  
사건 자체는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 뒤 조선 및 대한제국 측의 후속 자구책이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다 보니 좀 미묘한 평가를 받은 거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전위대  
강화도 조약 자체는 신헌이 자주적으로 나온 거 맞는데 운요호에겐 발린 게 맞는 걸로... 일단 좀 더 알아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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